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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로 장사 시작… 85개 계열사 거느린 그룹 총수로

입력
2015.06.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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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국 회장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집안에서 ‘돌연변이’로 자랐다. 1957년 전북 익산에서 4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수완 좋은 장사꾼이었다. 장사하는 재미에 빠져 형제들 중 유일하게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대신 병아리를 키워 닭을 기르고 그걸 팔아 다시 염소와 돼지를 키우면서 4,000만원이란 거금을 모았다. 이를 토대로 이리농림고 재학 중이던 18세 때 전북 익산에 육계농장을 설립했다.

김 회장의 다른 형제들은 각각 대학 총장, 초ㆍ중등교사, 공기업 직원이 돼 ‘교직에 뜻을 품으라’는 부모의 뜻을 이어 갔다. 노모(91)는 요즘도 그를 보면 “나머지 다섯 명의 자식들보다 너 하나 키우기가 훨씬 힘들었다”는 말을 농담처럼 던진다.

김 회장은 닭 가공업체 하림을 사료전문업체 제일사료, 양돈 전문업체 팜스코와 NS홈쇼핑 등 85개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으로 키우면서 매 순간 순탄치 많은 않았다. 2003년 5월 1만평에 달하는 익산 공장이 대형화재로 잿더미가 돼 1,000억원 대 피해를 입었고 설상가상으로 같은 해 조류독감이 휩쓸어 닭고기 소비가 급감했다. 그가 하림그룹 최대의 위기로 꼽는 시기다. 그는 “결과만 보면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성장하기까지 시련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슬하에 1남 3녀를 둔 김 회장은 “현재 군 복무 중인 장남을 포함해 자식들 중 누군가가 기업을 물려 받았으면 한다”는 속내를 솔직히 밝혔다. 다만 본인의 적성에 맞고 경영 능력을 보여야 한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을 물려주는 것은 기업철학은 물론이고 위험 요소까지 물려주는 것”이라며 "모든 것을 감당할 능력을 보일 때 (기업 상속이) 가능한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취미는 4년 전부터 시작한 승마다. 매일 새벽 6시 빠지지 않고 경기 과천의 승마장을 찾아 말을 탄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 매주 토요일마다 노모가 사는 익산으로 내려가 다음날 함께 예배에 참석한다. 김 회장은 “말을 듣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는 아들 걱정만 하시던 어머니가 어느새 100세를 바라보신다“며 “남은 시간을 자주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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