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 캐스팅 김윤석이 처음, 사투리 공부 안 시켜도 돼 편해
부산 배경 영화 의도한건 아닌데… 악재에도 200만 돌파 마음 놓여
영화 ‘극비수사’ 개봉을 앞두고 곽경택 감독은 “난 참 운이 없구나”라는 생각에 젖었다. 메르스가 흥행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곽 감독이 메르스에 걸린 공룡에 짓밟히는 꿈을 매일 꾼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영화계에 돌 정도였다. 메르스 여파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쥬라기월드’의 흥행몰이가 겹쳤다는 이야기다.
곽 감독 등의 우려와 달리 영화는 흥행 순항 중이다. 지난 27일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터미네이터 제네시스’가 2일 개봉하는 등 강자들이 릴레이로 나오지만 300만 고지도 넘볼 만한 상황이다. ‘극비수사’가 올해 극장가에서 맥을 못 추는 한국영화의 구원군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언제적 곽경택이냐”는 비아냥이 쏙 들어가는 분위기다. 최근 서울 역삼동 영화사 신세계 사무실에서 만난 곽 감독은 “악재들을 좀 비켜나가 어느 정도 성적을 내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극비수사’는 1978년 전국을 들쑤셨던 유명한 유괴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하교 길에 사라진 아이를 찾는 형사 공용필과 역술인 김중산이 갈등하며 우정을 쌓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다. 워낙 잘 알려진 실화라 투자 받기가 어려웠다. 김윤석의 출연이 확정되며 영화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곽 감독은 “언젠가 임자가 나타나겠지 생각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괴사건이 벌어진 곳은 곽 감독의 여동생이 다니던 초등학교였다. 누구보다 잘 안다 여겼던 사건이었으나 형사와 역술인이 힘을 합쳐 아이를 구해낸 뒷이야기는 알지 못했다. ‘친구2’ 준비를 위해 제주도로 전직 형사 취재를 갔다가 생각지도 않게 비사를 들었다. 역술인이 유괴된 아이 사주에 맞는 형사를 지목하는 등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니 곽 감독의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친구2’ 제작을 잠시 중단하고 일주일 동안 글로 정리를 해두었다. “감독들이 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어떤 이야기에 설득되고 호기심을 가지면 영화로 만들어서 관객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집니다.”
영화는 제목과 달리 액션보다 인간애에 방점을 찍는다. ‘극비수사’라는 강렬한 제목은 오해를 살 만했지만 곽 감독은 “딱히 대안이 없었다”고 했다. “‘형사와 도사’라는 제목이 거론됐으나 (코미디영화) ‘군수와 이장’ 느낌이라서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부산 서구에서 자랐고 충무로에서 오래 활동 중인 사이인데도 김윤석과는 첫 대면이다. 곽 감독은 “영화계에서 교류를 별로 안 한다”고 했다. “모임 나갔다 영화 아이디어를 두 번 정도 도용 당하니 더 이상 못 나가겠더라”며 웃었다. 김윤석은 자신의 영화에 처음으로 캐스팅한 부산 배우라 “사투리 공부시키지 않아도 돼 편했다”고 한다. 그래도 김윤석이 열성을 보였다. “그가 부산 사투리 대사를 맛깔스럽게 살려보려고 집에서까지 처음으로 대사 연습을 해 부인이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더군요.”
‘극비수사’는 곽 감독의 12번째 장편영화다. 1997년 ‘억수탕’으로 데뷔한 뒤 일군 이력엔 다작 감독이라는 수식이 적합하다. 그는 “1년에 1편씩 만들자는 게 데뷔 당시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욕심이라기보다는 (뉴욕대학 유학시절) 한 학기에 단편영화 하나씩 만들던 데서 비롯된 자연스런 습관 같다”고 그는 자평했다. “제가 어떤 학기에 영화를 안 만들었는데 엄청 불안하더라고요. 다른 애들은 막 장비 가지고 뛰어다니는 걸 보니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곽 감독하면 부산이고,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면 곽 감독이 떠오른다. 곽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어느 기자가 ‘나중에 (부산에서 출마하실거냐’고 심각하게 묻기도 했다”며 그는 웃었다. “그래서 제가 ‘그걸 왜 해요’라고 말했어요. 저 그런 거(정치) 정말 재미없습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