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서를 만나다' 연작… 서구의 불평등한 시각 전복시켜
자신에 대한 의문 담은 셀카, 역사적 맥락 담아 오히려 해학적
선글라스를 쓰고 인민복을 입은 동양 남자가 자신의 머리 위에 높게 걸린 성조기를 왼손으로 반쯤 젖히며 오성기를 뒤로 하고 오른손에 셔터릴리스를 채찍처럼 들고 서 있다(‘동이 서를 만나다 선언(East Meets West Manifesto)’ 1983년 50×50인치). 이 아이러니한 셀프 초상화 사진의 주인공 쳉퀑치(曾廣智ㆍ1950~1990년)는 사진가이자 개념미술가였다.
쳉퀑치는 홍콩에서 태어나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뉴욕에서 활동하다 죽었다. 1979년 뉴욕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사진 작품을 만들기 시작해 1989년까지 10여년에 걸쳐 ‘동이 서를 만나다’ 혹은 ‘탐험적인 자화상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는 아웃사이더이자 인사이더였고, 중국도 대만도 아닌 홍콩에서 태어났으며, 살다 보니 미국인이 되었다. 성조기와 오성기, 미국과 중국, 동양과 서양 사이에 낀 그는 누구인가.
미국인 되기를 조롱하는 몸개그
쳉퀑치는 자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거나 동양인의 정체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단지 어떤 장소와 상황 속에 집어넣어 그것과 대비시킬 뿐이다. 그는 인민복을 입은 동양인이 서양의 기념물 속에서 뻣뻣한 자세로 관광객이 되는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과 서양의 만남에서 생겨나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정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인민복을 입은 채 풍경 속에 있는 그는 로봇처럼 뻣뻣한 몸과 촌스러움을 보여주지만 정작 자신의 정체를 선글라스 안으로 숨겨버린다.
그는 마오의 인민복을 입고, 가슴에 방문객 신분증을 단 채 서구의 기념물이나 관광 명소, 혹은 숭고한 자연 속에 자신을 집어넣어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모호한 외교사절’이라 불렀다. 그런 사진찍기는 퍼포먼스이자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개념예술이었다. 자신을 유명한 장소나 기념비 속에 홀로 선 이방인으로 배치하여 낯설고 뜬금없는 효과를 만들었다. 다가올 지구화 시대의 동양인의 정체성에 대해 미리 질문을 던진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런 그의 뜻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내 선글라스는 내가 찾았던 중립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효과를 안겨주었다. 나는 탐구심이 많은 여행자이며 내 시대의 증인이고 모호한 외교사절이다.” 쳉퀑치가 자신을 묘사한 글이다. 그는 여러 겹의 삶 속에서 그의 사진만큼이나 아이러니하게 살다 죽었다. 하나의 정체성과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우리에게 그는 어쩌면 사기꾼이자 배신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는 마오의 옷으로 변장한 홍콩 출신 중산층의 이민자이거나 미국 사람이 되어버린 동양인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보다 네 살 아래 신디 셔먼(미국 사진작가)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식적으로 드러내는 초상화를 찍었다면 그는 자신을 진정으로 숨기는 초상화를 찍었다. 그것은 미국인 되기를 조롱하는 몸개그이자 패러디이기도 했다.
바보가 되어 남을 더 바보로 만들기
미국에 사는 다수의 동양인은 미국인의 말과 행동을 흉내 낸다. 살과 뼈까지 미국인이 되고 싶어한다. 소수 인종 이민자로서 설움을 겪은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 놀러 온 관광객조차 백인 미국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정체성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꽉 끼는 인민복을 걸치고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근엄하게 연출했다. 그의 인민복은 그의 중국인이란 사회적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그의 선글라스는 그의 얼굴과 개성을 미지의 것으로 보호한다. 마치 “너희들이 나를 꼭 끼는 인민복을 입은 차이니즈로 보지만 너희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듯. 이것이 그가 미국과 대등하게 만나는 방식이었다.
쳉퀑치는 좀처럼 인민복을 벗지 않았다. 옷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기념비나 관광 명소와 대비해서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 작품은 기념비와 대비되는 정치성을 지닌다. 그가 스스로 중국인임을 과장해서 드러내 보여주는 이유는 자신을 서구의 맥락에 집어넣을 때 만들어지는 아이러니를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다.
쳉퀑치가 인민복을 입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에피소드가 있다. 뉴욕으로 그를 만나러 온 부모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의 이야기다. 그는 구제품 상점에서 구입한 인민복을 입고 부모를 만나러 식당에 갔다. 한때 국민당 지지파였던 그의 아버지는 인민복을 입은 그를 몹시 못마땅해했지만 식당 주인은 그날 저녁 내내 그를 대사처럼 여기며 깍듯이 접대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인민복을 입고 미국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사진을 직접 찍는 셀프 사진찍기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서구의 기념물을 우습고 아이러니하게 바꿔 쓰러뜨린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자유의 여신상과 링컨상도 그가 끼어들면 갑자기 무너져버린다. 진지한 듯 하지만 멍청하고 뻣뻣하게 서서 때로는 우러러 보고 때로는 딴 곳을 보면서 자신의 눈동자가 정말로 응시하는 곳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그런 공허한 시선과 몸짓으로 기념물을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전복은 그가 풍경에 끼어들어 서양을 쓰러뜨리는 방식이었다. 쳉퀑치는 자신이 바보가 되면서 상대를 더 바보로 만드는 채플린 같은 퍼포먼스의 재주를 지녔다.
우리는 찍는 삶인가? 찍히는 삶인가?
그의 사진은 단지 초상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뒤집거나 도발하는 유형의 사진과는 다르다. 아월 에리츠쿠(Awol Erizku)는 사진으로, 케힌데 윌리(Kehinde Wiley)는 초상화 그림으로 흑인의 인종적 정체성을 패러디해 보여주지만 그들이 놓이는 탈역사적인 맥락 때문에 쳉퀑치의 사진이 드러내는 긴장되고 도발적이며 해학적인 구조를 지니지 못한다. 억눌리고 소외되고 궁핍한 인간을 거꾸로 영웅화하여 다른 위치에 앉힌다고 그들의 삶이 회복되거나 비판적인 정체성을 얻지는 못한다. 그것은 그냥 내실 없는 위로이거나 허위적 자존감에 지나지 않는다.
쳉퀑치의 셀프 카메라는 요즘의 스마트폰 셀피와도 다르다. 그의 작업은 자기에 대한 의문이자 질문을 던지는 사진찍기였다. 스마트폰 셀피는 자신에 대한 드러내기와 과시이자 자기만족이다. 그래서 스마트폰 셀피에는 정체성을 향한 움직임이 없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고민이 깃들 틈이 없다.
우리에게는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고 그것을 재현하는 동시에 넘어설 지점을 발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좌절하는지, 어디에서 비겁해지는지, 어느 지점에서 무너지는지 알아내고, 그 이유와 디딜 발판을 보여주는 게 진짜 비판적인 사진 작업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자기일 수 없다. 인간은 어느 장소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면서 어떻게 행동한다. 아무런 배경도 없이 나 홀로 존재하는 자화상은 그야말로 얼굴만으로 자신을 전달하지만 그것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때나 가능하다. 죽은 사람의 영정이 그것이다. 산 자의 자화상은 그래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자기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쳉퀑치가 선글라스를 벗은 사진도 있다. 그리고 셔터릴리스를 잡고 있지 않는 사진도 있다. 그것은 그가 친한 친구들과 일상생활 속에 있거나 스스로 셔터의 통제권을 놓고 있는 사진이다. 그것은 더 이상 퍼포먼스를 하지 않을 때의 사진이다. 그런 사진은 그가 찍는 것이 아니라 찍힌 사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찍는가, 찍히는가에 따라 두 개의 다른 정체성으로 갈라진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찍는 나인가 남에게 찍히는 나인가. 이 복잡하고 머리 아픈 경계에서, 찍는 나와 찍히는 나의 숨막히는 뒤집힘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되고 자신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모두 다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쉽게 자신을 판단하거나 주장할 일이 아니며 아울러 남의 정체도 그렇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쳉퀑치도 그런 모순과 아이러니 속에서 살다 39살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죽었다. 그가 다시 돌아와 내 친구로 지내면 참 좋겠다는 공상을 해본다.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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