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관계 파탄, 불가피한 사회 현상"
원고측 변호인 파탄주의 허용 주장
"경제력 열악한 여성들의 피해 우려"
피고측 변호인 유책주의 고수 주장
“파탄주의는 이미 파탄이 난 부부를 새 출발시켜, 적대적 이혼절차 대신 ‘성숙한 이혼’과 ‘깨끗한 청산’을 기대할 수 있다.”(이화숙 연세대 명예교수)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인정하면 경제적으로 열악한 배우자가 피해를 입고, 무책임한 혼인생활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
26일 오후2시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이혼소송 공개변론. 혼인파탄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 인정 여부에 대한 유책주의(有責主義)와 파탄주의(破綻主義)를 놓고 팽팽한 공방이 2시간 가량 이어졌다.
유책주의란 정조, 부양 등 혼인 의무를 저버린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으로 대법원이 1965년부터 반세기 동안 채택하고 있다. 남편(아내)이 일방적으로 부인(남편)을 내쫓는 ‘축출이혼’을 막는 역할을 해왔다. 파탄주의는 현실적으로 혼인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면 이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하급심에서 세태 변화에 따라 이를 인정하는 판례가 늘고 있는 추세다.
이날 공개변론 대상이 된 사건은 1976년 결혼한 남편 A씨가 1998년 다른 여성과 사이에서 혼외자를 낳은 뒤 동거하다 2011년 아내 B씨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대로 A씨는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원고 측 참고인인 이 교수는 파탄주의를 인정할 때가 됐다며 판례 변경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유책주의는 여성이 이혼 피해자에 머물던 시절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논리다. 실제 지금은 여성 지위가 향상됐고 법적인 차별규정도 개정돼 있다. 또한 이혼자녀에 대한 양육권ㆍ친권에 동등한 권리가 인정되고 있다. 원고 측 김수진 변호사도 “혼인관계의 파탄은 불가피한 사회현상이며, 세계는 이미 파탄주의로 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이 상당 기간 별거를 기준으로 혼인관계의 파탄을 추정해 이혼을 허용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피고 측은 피해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의 현실을 감안하면 아직은 파탄주의가 시기상조라고 반박했다. 조경애 부장은 “다양한 법적 장치가 미비해 유책주의 기조를 일시에 걷어내는 것은 국민 법 감정에 비춰 가능하지 않다”며 “경제적으로 열악한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보호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소영 변호사도 “혼인도 하나의 민법상 계약이기 때문에 신의성실, 권리남용 금지라는 민법의 대원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유책 배우자의 인권보다는 상대 배우자와 자녀의 행복추구권, 생존권이 더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공개변론을 종결하면서 “일거에 해소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모든 사람이 다같이 고민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며 “국민의사를 수렴한 입법적 해결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현재 그런 입법이 없는 상황에서 법 해석을 통해 어느 정도의 적절한 결론을 낼지 고뇌가 따른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 선고 기일은 추후 지정된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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