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 개편 카드 단골 위기관리용
서두른 개편은 실무형보다는 전시형
대통령 국가컨트롤타워 역할이 핵심
정부조직 개편은 역대 정권의 단골 메뉴였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이뤄진 크고 작은 조직 개편을 합치면 30건이 넘는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부터는 ‘집권=대대적 조직 개편’이 정례화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취임 후 교육과학기술부,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일부 업무를 통합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고, 2008년 폐지된 해양수산부를 부활했다.
조직 개편이 고여 있는 공무원 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조직 통폐합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밥그릇 챙기기가 고질적으로 일어나고, 소외된 부서의 불만이 가중돼 우수한 인력이 빠져 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박 대통령은 당시 세월호 참사 원인으로 지적된 관피아 척결과 ‘국민안전 정부’를 표방하며 재난에 적시 대응이 가능한 체제 구축을 위해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이 와중에 해체된 해경 조직은 아직도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재난선포권이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면서 소방조직 개편을 둘러싼 지자체와 소방본부와의 갈등 조짐도 보인다.
이번에도 박 대통령은 신종 감염병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과 제도 정비를 언급했다. 메르스 사태가 채 끝나지도 전에 흘러 나온 조직 개편에 관련 부서가 벌써부터 동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공중보건 위기 대비 조직역량 강화안’은 질병관리본부(질본)를 질병예방통제본부로 개명하고, 현재 3센터인 체제를 4부 1센터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형식적으로는 질본의 조직과 기능을 강화하는 듯 하지만 위기 시 병원 폐쇄, 인력 차출 등 긴급대응 권한은 보건복지부가 쥐고 있어 업무영역이 분명치 않다. 서두른 모양새가 역력하다.
국가 비상상황에서 조급하게 이뤄지는 조직개편에 잡음이 생기는 것은 개편자체가 실효성 보다는 당장의 전시 효과를 염두에 둔 탓이 크다. 오히려 사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 간의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 꼭 필요한 기능을 보강하는 실무형 개편 방식이어야 믿을만해 보이고 제대로 기능도 발휘할 수 있다.
사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의 대응실패는 실무조직과 구성원들의 문제도 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컨트롤타워의 부재였다. 초기 위기인식이 안이했고, 이후 대응이 상당기간 중구난방이었던 것이 그 때문이다. 안정적 현상유지가 기본체질인 공무원들이 제 스스로 먼저 나서 상황을 키우고 요란 떨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시키는 이도 없는데 자칫 쓸데없이 국민 불안감만 조성한다고 책임추궁이나 받게 될 일을 할 리가 없다. 말할 것도 없이 국가 컨트롤타워의 핵심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첫 보고를 받고 곧바로 구조 책임자와 현장 요원을 독려했더라면. 메르스 사태 발생 즉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면 보고를 받고 좀 더 빨리 현장을 찾아 다그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 게 이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솔직한 반성 없이 실무조직을 아무리 손 대봐야 이후에도 별 기대할 게 없을 것이다. .
익히 아는 얘기를 또 할 수 밖에 없다. 이달 초 중국 여객선 둥팡즈싱호가 침몰했을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은 첫 보도가 전해진 지 4시간 만에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같은 시간 리커창 총리는 전용기로 사고 현장을 찾았다. 지도자들의 발 빠른 대응에 생존자를 찾는 기적이 일어났고, 신속한 인양도 가능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때도 간 나오토 당시 총리는 긴급하게 원전 전문가를 불러 사태를 파악, 원전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자임했다. 현장 정보가 사고 수습에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엊그제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가의 컨트롤타워가 지신임을 분명하게 못 박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정치영역뿐 아니라, 앞으로 또 닥칠지 모를 국가 비상상황에서도 최종 컨트롤타워로서의 그런 결연함을 보여주길 바란다.
한창만 논설위원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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