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위험은 현실로 나가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한 화력발전을 대신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원전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논쟁에서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자는 논의다.
‘저항안내서’를 쓴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는 현대인들이 소비지상주의에 물들어 ‘소비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사람들이 기업과 시장에서 제시하는 규격화된 상품 선택권에 취해 시장 밖에 다른 방식이 있음을 잊었다는 것이다. 과소비하지 않음, 윤리적인 삶, 공공선을 위한 도전은 ‘순진한’ 사람들의 가치가 돼 버렸다. 욕망을 솔직하게 추구하고 끝까지 관철하며, 매사에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장경제의 논리가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벨처의 비판은 저항 운동에 대해서도 냉혹하다. 사람들은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적인 자세를 소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친환경’이라는 딱지를 붙인 상품들이 무수히 생산 판매된다. 애플 하청업체 폭스콘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항의하기 위해 사람들은 애플 불매 운동을 벌였지만, 폭스콘이 그 경쟁업체에도 전자 부품을 납품한다는 아이러니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2011년 뉴욕 월가에서 벌어진 점령 운동 역시 저자의 눈에는 ‘소비 가능한 저항적 자세’일 뿐이다. 그는 월가 점령을 “스테판 에셀의 3유로짜리 분노(그가 낸 소책자 ‘분노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출판시장에서 마케팅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로 촉발된 감정의 배출이거나 단순한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그럼 무엇을 하란 말인가? 저자가 그리는 것은 소비사회에서 벗어난 ‘공동체 유토피아’다. 일을 적게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수입도 줄었지만 지출도 그만큼 줄었기에 생활수준은 나빠지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상품을 찍어내 소비자의 입에 억지로 구겨 넣던 초거대 기업은 사라지고 필요한 물건은 지역 공동체에서 만들어진다. 지역에서 만들 수 없는 물건은 가능한 한 수리해서 쓰거나 한 물건을 이웃끼리 돌려 쓴다.
꿈 같은 소리로 들린다면, 이 책의 원제목이기도 한 저자의 표어 ‘스스로 생각하라’를 떠올려 보자. 소비 사회에서 이탈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이미 존재한다. 태양광 발전회사인 쇠나우전력회사를 운영하는 독일의 슬라덱 부부는 고객을 공동 출자자로 받아들여 지역 에너지 발전을 실천하고 있다. 스위스연방철도는 기업의 수익성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최상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로 낮은 운임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스위스 수도 베른 국민의 절반은 자가용이 없다.
저자는 소비사회가 이미 한계에 다다랐으며, 인류 문명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가 세계 대전이나 원전 사고 같은 비싼 대가를 치르기 전에 사람들은 더 지혜롭게,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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