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뭐해?”
“응. 이력서 봐. 아부지 이력서.”
늦저녁이었다. 수다나 떨까 해서 전화를 했더니, 선배는 그 시간에 아버지의 이력서를 보고 있다 했다. 아버지는 전문 분야에서 수십 년 이력을 쌓고 은퇴하셨다. 은퇴 후 5년이 지났더니 퇴직 후 이력은 백지가 됐다 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도우려고 이력서를 들었다. 일 년 전만해도 본인 이력서를 보고 있던 사람이, 아버지 이력서를 또 보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거친 문장을 하나씩 다듬고 있다 했다.
묘했다. 정말이지, 꿈도 어렵고 업도 어렵다. 나 하나 책임지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요즘 와서야 알았다. 나는 얼마 전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끝냈다. 이걸 ‘구춘기’라고도 하던데, 졸업 이후 한 학기가 지난 9학기에 찾아오는 방황의 시기다. 나는 새삼 내가 이렇게 ‘쫄보(좀스럽고 못난 짓을 하는 사람)’였나 싶다. 하나를 포기하면 하나를 얻는 게임은 아닌데도, 꿈과 현실을 저울질 하게 된다. 그 현실의 저울 위에 부모의 삶도 함께 있어서다.
예전부터 나는 머뭇거림 없이 가난을 한 양동이 뒤집어쓰고도 꿈에 뛰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불안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면 스스로 확신을 만들면 된다고 여겼다. 지금은 그게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복잡한 불안이란 게 느껴진다. 확신만 가진다고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
게다가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꿈이 꼭 ‘업’과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꿈이 ‘업’의 형태로 분명하게 있는 일도 드물다. 뭘 하고 살 건지, 어떤 태도로, 뭘 중시하며 살 건지 그런 생각을 다 버무려서 걷게 되는 길이 ‘업’이 되는 것뿐. 반대로 꿈이란 단어에 포함된 생각은 지금 ‘생존’에 도움 되지 않는 것. 내게 주어진 ‘책임’과 먼 것. 현실적이지 못한 요소들을 뭉뚱그린 것이다.
나의 생존이야 뭐 ‘그 까짓 거 입 하나에 풀칠하는 게 어렵겠나’ 싶다. 그렇지만 눈앞에 아른아른 하는 부모님 얼굴을 생각하면 현실 쪽으로 저울추가 기운다. 아버지의 이력서를 다듬던 선배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의 일, 그리고 아버지의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의 이력서에서 수십 년 선장 경력에서 얻은 교훈을 읽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일에 대한 아버지의 포부를 읽었다. 문장을 다듬으면서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이력서를 쓰고 있는 날들.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건 이런 복잡한 풍경이다.
나의 부모 세대는 자식에게 많은 걸 쏟았다. 애들 기르느라 번 돈은 다 썼다. 가진 건 주택대출을 낀 집뿐이라 ‘하우스 푸어 족’이라고도 한다. 30년 청춘 농사를 끝냈더니 노후까지 또 30년 농사가 남은 분들이다. 정신없이 오십 문턱을 넘고 나니 또 이모작 인생 시작이다. 그 어려움을 보고 듣는다. 수십 년 해온 일과 상관없이 택배 배달을 시작하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아버지, 어머니들.
이제까지 부모 등골을 빼먹고 자랐다. 지금도 솔직히 야금야금 부모 등골 빼먹고 있는 룸펜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것을 부모님께 빚졌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나를 키우느라 인생의 절반을 쏟은 것을 안다. 그래서 더 번듯해지고 싶다. 더 보란 듯이 좋은 자식이 되고 싶다. 첫 월급으로 용돈을 두둑이 드리는 걸 꿈꿔보고 한다. 그래서 (사실 그래봤자 별로 더 안정적일 것도 없는데) 조금이라도 안정적일 길을 자꾸 셈해본다. 마음 구석에 죄책감이 웅크리고 있어서다.
나는 요즘 청년들이 ‘도전의식’이 없다거나, ‘눈이 높다’는 말을 들으면 할 말을 잃는다. 나는 청년에게서 소심함과 오만함을 읽는 것이 싫다. 마음 한편에 새긴 죄책감과 생존의 키워드를 읽는 것이 맞다. 젊은 사람들은 이직이 잦다며 나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채용실태 조사를 보면, 2014년에 회사를 떠난 신입사원이 4명 중 1명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요즘 신입사원은 깡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깡’의 문제가 아니다. 깡이 아니라, 죄책감과 돈의 문제다.
“내가 진 빚만 갚으면, 밑천만 좀 생기면, 그 땐 하고 싶은 걸 해봐야지.”
이런 생각으로 일단 들어가고 보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2~3년 일해서 돈을 벌어두고 나면 이제 0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해보고 싶은 일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그 때야 드는 게 아닐까 싶다. 금수저나 은수저 정도 물고 태어난 게 아니면, 졸업까지 치르곤 마이너스 인생이 된다. 나는 수저 없이 태어나진 않았다. 쇠수저 정도 물었다. 빚도 재산이라고, 사교육도 받고 대학도 다녔다. 이런 얘긴 아마 딱 그 정도에 해당하는 누군가만 와 닿을 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처음부터 내어줄 등골이 없었던 사람들도 많으니까.
부모가 나에게 들인 돈이 많아서, 그게 또 빚이 돼서 ‘진짜 독립’의 시기는 점점 늦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업으려다, 혹은 업히려다 함께 넘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와 자식 모두 서로에게서 독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족의 중심부에 죄책감과 책임감이 자리 잡으면 누구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가족끼리 서로 한 손을 놓아줄 용기와, 가족 말고 서로를 지탱할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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