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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웃기지만 안 팔릴 것 같은 책" 번역가의 말에 모험

입력
2015.06.2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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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나요?” 수십 번 받은 질문이다. 이렇게 엉뚱한 책을 누가, 왜 냈는지 많이들 궁금해하는 듯하다. 3년 전으로 돌아간다. 평소 절친인 홍익대 앞 독립서점 ‘유어마인드’의 주인장 이로씨를 만났을 때였다. “내, 본격적으로 단행본 출판을 하려는 참인데 번역할 만한 죽이는 타이틀 어디 없을까요?” 이로씨가 며칠 후 이메일을 보내왔다. “연필 깎는 방법에 관한 책입니다만, 죽이는 책일지는 모르겠네요.”

원서 제목은 ‘연필 깎는 법’(How to Sharpen Pencils). 번역가에게 검토를 부탁했다. 얼마 후 번역가는 ‘한마디로 미친 책인 듯. 어이없는 주제를 매우 진지하게 다룬 굉장히 웃기는 책’이라는 총평을 들려줬다. ‘그런데 왠지 한 권도 안 팔릴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당시 아마존 독자 서평 중 별을 제일 적게 준 평이 좀 특별했다. 단순한 혹평이 아니라, 저자에게 주문한 연필로 질식하려던 사람의 목을 뚫어서 간신히 살렸는데, 연필은 피에 젖었지만 완벽한 뾰족함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더라는 얘기.

번역가 말처럼 누가 이런 책을 살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걸 잊을 만큼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번역가는 웃느라 작업 시간이 지체될 정도였고, 나는 교정 보면서 많이 울었고(너무 웃어서), 이로씨는 자신이 소개한 책이 정말 한 권도 안 팔릴까 봐 초조해하면서도 이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초판 1,500권 찍었다. 이것만 팔려줘도 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무려 ‘중박’을 쳤고 4쇄를 앞둔 지금도 반응이 꾸준하다. 판매는 그렇다 치고 우리를 정말 고무시켰던 것은 책 자체가 하나의 알레고리로서 많은 독자에게 영감을 줬다는 점이다. ‘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를 논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누군가는 ‘악수하는 법’이나 ‘신발 끈 매는 법’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에서조차 작지만 긍정적인 의미, 나아가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연필 깎기의 정석’은 2007년 잡지사로 출발한 출판사 프로파간다가 대중 출판을 해보자고 마음먹은 후 낸 첫 책이다. 이 책을 출간하고 나서야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엄숙주의와 거대 담론의 반대편에서 가령, 농담처럼 진실을 말하거나 웃으면서 화내는 식의 책들이다. ‘연필 깎기의 정석’ 이후 ‘비밀기지 만들기’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 ‘좀비사전’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 등을 출간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지만 ‘사소한’ 유용함으로 가득 찬, 무엇보다 우리가 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을 책들이다. 이런 게 어느덧 프로파간다의 색깔이 됐다. 그 서막을 떠들썩하게 장식해 준, 진정한 미친 책 ‘연필 깎기의 정석’에 경배를!

김광철 프로파간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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