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계절이다. ‘Apple’ 아니라 ‘Apology’의 사과다. 소설가 신경숙씨가 표절 문제로 사과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메르스 사태로 사과했으며, 진보 논객 한윤형씨가 상습적 데이트 폭력으로 사과했다. 앞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회항’과 사무장 폭행으로 사과했고, 개그맨 장동민씨와 그의 친구들(옹달샘)이 여성혐오와 막말 논란으로 사과했다. 형식은 제 각각이었다. 신경숙씨는 신문과의 단독 인터뷰, 이재용 부회장과 옹달샘은 무수한 카메라 앞에서의 구두 사과, 한윤형씨는 A4용지 수장에 달하는 온라인 사과문, 조현아 전 부사장은 찢은 종이에 휘갈겨 쓴 즉석편지….
사과는 통상 사태의 마무리 단계임에도, 한국 사회의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사과는 대체로 종결형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했다. 사과의 기술이 절실한 시절이다. 특히 설화(舌禍)의 바다 인터넷을 즐겨 항해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기술을 익혀둘 필요가 있다.
● 누가 누가 사과 잘했나
‘Simple is beautiful.'(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스티브 잡스의 이 정언명령은 애플사의 디자인뿐 아니라 사과의 행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미안하다’는 동사와 절대 결합해서는 안 되는 구문들: “내가 ‘미안하다’고 말했잖아.” “미안하다. 이제 됐냐?” “알았어, 알았어. 미안하다고.” “네가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진실한 사과는 결코 복문으로 씌어질 수 없다. 여기서 간결하다는 것은 신경숙씨의 첫 번째 것처럼 무책임한 사과나 조현아 전 부사장의 현관에 끼워놓은 쪽지처럼 무성의한 사과와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 사과가 실패하는 것은 실수와 잘못을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마음 때문. 힘들게 그 마음을 되돌렸다면 변명과 합리화의 너저분한 장식들을 다 떼버린 채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미지컨설턴트협회장인 정연아 이미지테크연구소 대표에게 누가 가장 사과를 잘했는지 물었다. 신경숙씨의 사과는 마지못해 내놓은 ‘지능형 사과’라고 평가했다. 진정성이 부족하니 발끈하는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한윤형씨의 사과는 일단 너무 길다는 점에서 낙제점이다. “아무리 진리여도 짧아야 한다”는 것. 조현아 전 부사장의 사과에 대해서는 “설령 내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지 못하더라도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는데 진정성은커녕 억지로 사과했다는 인상만 풍겼다”고 평했다.
가장 바람직한 스타일의 사과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라는 게 정 대표의 평가. “이미지 메이킹의 개입이 있었겠지만 차마 욕할 수 없는 깔끔한 사과였다”며 보는 이에 따라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울먹이는 듯한 모습이 진정성을 부각시켰다”는 설명이다.
사과의 매뉴얼이 매너의 하나로 작동하는 미국에서는 이런 깔끔한 사과를 연예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7세 때의 인종주의적 발언이 드러나 전 세계적 지탄을 받았던 약관의 팝 스타 저스틴 비버는 “그런 말이 지닌 (폭력적) 힘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혀 재미도 없고 무지한 행동임을 모른 채 상처를 주는 말과 농담들을 계속해왔다. 친구와 가족들 덕분에 실수로부터 배우게 됐고, 성장하게 됐다. 지난 잘못들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모두가 용서했다.
애인을 두고 유부남과 불륜 행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 비난 받았던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순간적인 무분별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과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공개적으로 사죄했으며, 혼외자식이 발각된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변명은 없다. 내가 초래한 모든 상처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 혼자 진다”고 터미네이터처럼 멋지게 사과했다. 둘 다 결별과 이혼을 당했지만.
● 북극의 빙하도 녹이는 사과의 기술
가장 효과적이고 근사하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사과의 기술은 뭘까. 심리학자 스티븐 셰어와 존 달리 교수가 1997년 언어심리학 연구 저널에 발표한 ‘사과 표명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사과 언어 수행의 실현 효과들’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이 분야의 고전으로 꼽힌다. 사과의 다양한 발화 상황에서 작동하는 수행자들의 언어심리를 분석한 후 사과의 4단계 구조를 제시한 이 논문을 토대로 프리랜서 작가 루스 힐은 적절한 사과의 기술 4계명을 적용한 실례를 보여준다.
- 1단계: 후회를 표현하라. 모든 사과는 “미안하다” 또는 “사과한다”의 매직워드로 시작해야 한다. 이 표현이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상처나 피해를 입힌 자신에 대한 자책이 담겨있어야 한다. 예시: “어제 회의 시간에 당신한테 소리를 질러서 미안하네. 그렇게 행동한 게 너무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나네.” 이 과정에서 “사랑하는 당신을 아프게 한 것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라든가 “나를 믿고 지지해준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이 부끄럽기 때문에” 같은 사과를 하고 싶어하는 진실한 이유가 드러나야 한다. 이때 자칫하면 상황을 재빨리 종료하고 싶어한다든가 이해관계의 실속을 고려했다든가 하는 이면의 동기가 들통나는 수가 있다. “미안하니까 이제 그만하자” 같은 말이 최악의 사과인 이유다.
- 2단계: 책임을 인정하라.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자 잘못이라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전부’ 자신의 책임이 아닌 경우도 있고, 사실 따지고 보면 한 사람이 모조리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객관적 진실은 사과를 해야 하는 순간에는 잠시 잊어야 한다. 사과를 하기로 했다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과 대상자의 감정과 상태에 사과 주체가 충분히 감정이입을 했는지 여부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상대방이 어떻게 느꼈을지를 구체적으로 표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기술이 특정해야 한다. 두루뭉술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피해자가 ‘뭘 잘못했는지 알긴 하나?’를 지속적으로 묻는 이유다.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사과에 나섰다가는 역풍만 맞기 쉽다. 여성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장동민씨의 ‘총체적인’ 사과가 그 예다.
예시: “내가 팀원들이 다 있는 회의시간에 소리를 질러서 자네가 얼마나 민망하고 당황스러웠을지 너무나 잘 아네. 나였더라도 분노했을 거네. 자네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내가 잘못했네.” 이는 상대방의 분노를 합법화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여기서 ‘당신이 회의시간에 딴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같은 가정을 덧붙이는 것은 금물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나눔의 행위는 대체로 바람직하지만, 책임은 이 순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구절절 상황 설명하기’와 ‘다른 사람 끌어들이기’는 사과하는 사람이 사로잡히는 가장 강력한 유혹. 에우리디케를 돌아다보고 싶은 오르페우스의 욕망만큼이나 강렬한 것이지만, 이 신화의 비극적 결말을 떠올려보자. “어제 사장님이 보고서 제출 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는 바람에 내가 예민해졌네” 같은 친절한 설명은 부디 입 안으로 삼키자.
- 3단계: 보상하라. 금전적이거나 이권에 연관된 것만 보상이 아니다. 여기서 보상이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상황을 피해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복구’의 의미다. 예시: “어제 회의 시간에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발언을 공격적으로 쏟아내서 미안하네. 내일부터는 당신의 리더로서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도록 회의 주재를 맡기겠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비례의 원칙에 부합하는 적절한 보상이어야 한다는 것. 너무 미약해도, 너무 과해도 모욕감이라는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 형식적인 겉치레나 공허한 약속보다는 정확하고 적당한 보상이어야 한다. 망가뜨린 것만 고쳐놓기. 죄책감을 과도하게 느낀 나머지 휴가나 연봉 인상 등을 제시하는 ‘오버’를 해선 안 된다.
- 4단계: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사과는 쌍방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켜보는 수많은 제3의 눈도 여기에 연루돼 있다. 조직이나 사회에서 한 사람의 평판과 신뢰도를 결정하는 것도 바로 이 단계에서다. 사과를 통해 진실성을 회복하고 이전보다 더 공고한 신뢰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후속 대책이 반드시 제시돼야 한다. 예시: “이제부터 스트레스 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겠네. 당신과 팀원 누구에게도 소리지르는 일은 다시 없을 걸세. 내가 또 그런 짓을 하면 나를 바깥으로 불러내주게.” 반복적으로 저지를 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사과의 대미는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맺는다.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사과라는 행위를 추동시킨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자 목적이다. “당신의 용서를 바랍니다”라는 언명은 권력의 주체를 사과하는 사람이 아닌 사과 받는 사람으로 되돌리는 행위다. 다음 단계는 이제 사과 대상에게 달린 것이다. 여기서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사과의 수용을 재촉하는 일. 애달픈 심정은 이해하지만, 묵묵히 처분을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용서해주겠나?”보다는 “용서를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것이 현명하다.
완벽한 사과의 예: “아직 날 용서할 준비가 안 됐을 거라고 생각하고, 충분히 그 심정 이해해. 단지 내 잘못을 사과하고 싶었을 뿐이야.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용서를 구할게.”
지엽적이지만 치명적인 팁 하나. 문자의 형식으로 사과할 때, 절대 오타나 비문을 쓰지 말 것. 그것들은 진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퇴고는 언제나 중요하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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