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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무명화가의 체취

입력
2015.06.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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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쯤 전, 외국 유명화가의 전시회엘 갔었다. 떠들썩했던 홍보와, 그로 인한 기대가 있었는데, 딱 그만큼의 실망만 돌아왔다. 조명의 각도나 그림과의 거리, 턱없이 멋을 낸 전시장 분위기 등 모든 게 탐탁지 않았다. 그때 문득, 내가 좋아하는 건 액자에 쌈빡하게 꽂힌 ‘작품’이 아니라, 무슨 목수나 농부의 창고 같은 데서나 풍길 만한 사람의 체취 아닐까 생각했다. 어느 무명 화가의 허름한 작업실에 들러 아무렇게나 쌓아둔 그림을 두루 살피고, 창틀의 먼지나 쓰다 버린 캔버스 따윌 만지작대며 “여기 참 세월 좋다”는 둥 이죽거릴 때의 그 심리적 방임 상태가 서늘한 각성을 주는 건지도 모른다.

아틀리에라는 공간에 대한 낭만적 동경만은 아닐 거라 믿는다. 누군가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꾸역꾸역 채워나가고, 그것으로써 자각하고 자립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내가 알기론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그 어떤 멋이나 되도 않는 품격을 운위한다면 그야말로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 명예나 돈에 대한 갈망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으나 그 이전에 그곳은 화가에겐 물질과 정신 영역 두루 포함한 생존 공간일 뿐이다. 그런 화가를 몇 알고 있다. 할 줄 아는 것도, 인맥도 학벌도 없어서 오로지 하루 종일 외롭게 그림만 그리는 사람을. 그리고 거기서 풍기는 매스껍고 뜨거운, 한 사람의 가난한 독기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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