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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이 만든 천국과 지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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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이 만든 천국과 지옥을 만나다

입력
2015.06.2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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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동떨어진 정글 속에 원시 인류가 살고 있는 신비한 나라를 떠올렸다. 열대의 뭉게구름 아래 파랗게 펼쳐진 바다와 야자수가 그림처럼 어우러진 남쪽나라를 상상했다. 반둥에 닿기 전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에 대한 밑그림은 그런 것이었다. 그 옆에 색다른 그림을 하나 더 걸어야겠다. 반둥은 살아있는 화산이 하얀 연기를 내뿜고 온천수가 솟아나는 흥미로운 탐험지다.

예비 신랑신부가 까와뿌티 분화구의 에메랄드빛 호수를 배경으로 웨딩촬영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예비 신랑신부가 까와뿌티 분화구의 에메랄드빛 호수를 배경으로 웨딩촬영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아빠까바르(안녕하세요)!’인천공항에서 자카르타 공항까지는 7시간, 생각보다 비행시간이 길다. 그나마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 승무원의 환한 미소가 위안이다. 공항에서 한참을 기다려 만난 현지 가이드는 자카르타의 지독한 교통 체증을 설명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목적지 반둥까지는 약 200km지만 5시간은 걸릴 거란다. 입맛이 없더라도 식사는 든든히 하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공항을 빠져나가는 길부터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꽉 찼다. 어깨동무하듯 좁은 길을 메운 이동 행렬에서 강한 삶의 의지가 묻어난다. 느리지만 쉼 없이 흐르는 물처럼 만만치 않은 저력이 느껴진다. 수도 자카르타가 위치한 자바섬은 인도네시아의 심장이다. 전체 2억5천만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자바섬에 거주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 반둥은 자와바라트주(서자바)의 주도다. 우리에게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제3세계 국가들의 모임인 반둥회의로 더 유명하다. 그들이 내건 반제국주의 기치는 서서히 퇴색했지만 반둥은 여전히 화산이 꿈틀거리는 뜨거운 땅이다.

까와 뿌티 화산호수
까와 뿌티 화산호수
까와뿌티 화산재가 영양을 공급하는 무공해 차밭.
까와뿌티 화산재가 영양을 공급하는 무공해 차밭.
열대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긴팔옷이 어색해 보이지만 반둥은 해발 고도가 높아 항상 기온이 선선하다.
열대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긴팔옷이 어색해 보이지만 반둥은 해발 고도가 높아 항상 기온이 선선하다.
까와뿌티 화산호수 주변에서 상인들이 딸기를 팔고 있다.
까와뿌티 화산호수 주변에서 상인들이 딸기를 팔고 있다.

반둥의 아침은 영롱한 햇살로 시작된다. 숙소인 트랜스럭셔리 호텔 앞 이슬람 사원의 지붕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수영장엔 이른 아침부터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에메랄드 빛 호수로 유명한 까와뿌티(Kawah Putih, 하얀 분화구라는 뜻이다)를 보려면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 50km 거리를 가는데 2시간 넘게 걸린다. 천천히 도로를 횡단하는 오리떼가 신호등을 대신하고, 실개천이 합류하듯 골목 곳곳에서 온갖 탈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작은 오토바이에 3명이 타는 것은 기본이다. 앞사람 허리를 꼭 끌어안고 달리는 모습이 곡예사를 보는 듯하다. 모두가 긴 팔 소매에 두꺼운 점퍼 차림도 더러 눈에 뛴다. 열대의 나라 인도네시아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지만 이곳은 고원도시 반둥이다. 해발 750m로 우리나라 태백보다 높다. 연평균 기온이 22℃ 정도로 쾌적하고 시원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피서지기도 하다. 20세기 초부터 휴양지로 개발돼 다양한 음식과 화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숙소도 잘 갖췄다.

드디어 2,430m 산정에 위치한 까와뿌띠, 분화구에 고인 옥색 물빛이 한없이 평화롭다. 얼핏 잔잔하게만 보이지만 산화 정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물 색깔이 원시의 신비를 보는 듯하다. 분화구 주위에는 유황을 채취했던 동굴들이 과거의 상흔처럼 남아 있다. 네덜란드와 일본 식민지배 당시 유황보다 더 뜨거운 피땀을 흘린 수많은 광부들의 한이 서린 광산이다. 에메랄드 빛 호숫가에서 결혼사진을 찍는 신혼부부의 모습에서 과거의 아픔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하산하는 길에 상인들이 다가와 싱싱한 딸기를 입에 넣어준다. 달다. 화산 토양이 만들어내는 단맛이다.

까와뿌띠가 사화산인데 반해 반둥 시내에서 북쪽으로 30km 지점에 위치한 땅꾸반쁘라후(Tangkuban Perahu)는 활화산이다. 빽빽한 산림을 지나 입구에 도착 하자 마스크를 파는 상인들이 먼저 다가온다. 까와뿌띠보다 몇 배나 유황냄새가 심하다. 메르스 공포가 휩쓸던 서울에서도 쓰지 않았는데, 이곳에선 마스크 없이 버티기 힘들다. 분화구 앞까지는 말을 탄다. 한참을 갈 줄 알았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는 지점에 폭발로 움푹 패인 분화구가 나타난다. 시커멓게 입을 벌린 분화구에서는 흰 연기가 쉬지 않고 피어 오른다. 살아 꿈틀대는 대지의 모습이다. 선선한 바람 덕분에 유황 냄새는 생각보다 짙게 느껴지지 않았다.

땅꾸반쁘라후 화산 팻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여행객들.
땅꾸반쁘라후 화산 팻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여행객들.
땅꾸반쁘라후는 항상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살아있는 화산이다.
땅꾸반쁘라후는 항상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살아있는 화산이다.
땅꾸반쁘라후 인근 식당의 생선요리.
땅꾸반쁘라후 인근 식당의 생선요리.

관광지에선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화산 옆에서 부채를 부쳐가며 정성스레 구운 옥수수가 고소하다. 노점상에선 인도네시아산 커피 향기도 진하게 풍긴다. 대폭발로 반둥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안겼던 화산이 이젠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친구가 됐다. 기념품 가게 점원은 본 채 만 채 통과하는 관광객에게 1만원에 10개라던 열쇠고리를 20개로 늘려준다. 뜨리마까시(감사 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들른 찌아뜨르 온천엔 여행의 피로를 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온천수에 몸을 담근다. 한나절 사이에 대자연이 만들어 놓은 지옥과 천당을 번갈아 오가는 느낌이다.

반둥(인도네시아)=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co.com

[여행메모]

●가루다인도네시항공이 인천에서 자카르타까지 주7회, 발리로 주6회 운항한다. 인천공항을 오전 10시30분에 출발하는 항공편은 자카르타에 오후 3시45분에 도착해 여유롭게 일정을 짤 수 있어 편리하다. 스카이렉스부터 5성급 항공사에 선정된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은 스카이팀 회원사다. ●트랜스럭셔리 호텔 반둥(www.thetranshotel.com)은 반둥공항에서 차로 30분, 땅꾸반쁘라후 화산에서 1시간 거리다. 18층 레스토랑은 반둥의 아름다운 경치와 별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명소다. ●발리로 여행할 계획이라면 새로 개장한 더 트랜스리조트 발리(www.transresortbali.com)를 이용할 만하다. 스미냑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자유여행객들에게도 편리하다. 184개 리조트 객실과 16채의 풀 빌라를 운영 중이다. 별도의 비치클럽과 수영장, 워터슬라이드와 스파 등 다양한 부대 시설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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