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기둥 세운뒤 돌무지 쌓은 흔적, 일제 발굴때 체계적으로 조사 안 해
코발트색 유리조각·은제 장식 출토, 무덤 주인 뒷받침할 유물은 없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은 23일 신라 금관총 재발굴 결과 신라 고유의 무덤양식인 지상식 돌무지덧널무덤의 축조 방식을 파악할 기초자료를 얻었다고 밝혔다. 기대했던 금관총의 주인을 파악할 수 있는 유물은 확인하지 못했다.
신라 최고 지배층의 무덤인 돌무지덧널무덤은 큰 나무상자(덧널) 안에 목관(널)과 부장품 등을 안치하고 그 위에 돌더미(돌무지)를 쌓은 뒤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드는 양식이다.
중앙박물관 등은 이번 발굴 조사에서 돌무지 사이에 틀 역할을 하는 목조가구의 흔적을 발견했다. 목조가구는 세로로 세운 나무기둥과 이 기둥들을 가로로 연결한 횡가목, 그리고 돌무지 바깥부분을 지탱하는 사선으로 눕힌 버팀목으로 구성됐다. 이번 발굴에서는 1.2m 간격으로 3열의 나무기둥을 세운 구멍과 함께 횡가목과 버팀목의 흔적이 돌무지 서쪽 사면에서 드러났다. 이런 목조가구의 흔적은 황남대총에서 확인된 적이 있지만 특히 이번에는 목조가구를 짜고 그 안에 돌무지를 쌓아 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돌무지덧널무덤의 형태 역시 새롭게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진 돌무지 모양이 봉분과 비슷한 반구형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번에 금관총의 돌무지는 위에 봤을 때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형태로 한 변이 20m 안팎으로 확인됐다. 옆에서 본 돌무지 단면은 양 경사면이 지표면과 50도 정도 벌어진 사다리꼴 형태였다.
금관총은 1921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발굴해 무덤 이름의 기원이 된 신라 금관(국보 제 87호)을 비롯한 여러 유물이 나왔지만, 고고학자가 아닌 일반인을 동원해 나흘간 유물만 서둘러 수습하는 졸속 발굴이었다. 94년 만의 이번 재발굴은 무덤 구조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금관총의 구조를 해명하기 위한 것이다.
금관총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추가 유물이나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금관총 유물로 2013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던 고리자루 큰칼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자가 확인돼 화제가 됐으나 정작 이사지왕이 누구인지, 이사지왕이 무덤의 주인이 맞는지 여부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때문에 학계는 이번 금관총 재발굴에 주목했지만 아직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새로 수습한 유물은 코발트색 유리그릇 조각과 은제 허리띠 장식 일부, 유리구슬, 금실 등이다. 이 중 코발트색 유리그릇 조각은 2013년 김해 금관가야 왕릉으로 추정되는 대성동 고분군 91호에서 출토된 ‘로만 글라스’와 성분이 같아 비교연구 대상으로 지목됐다. 신영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이미 조선총독부 조사 때 대부분의 유물을 발굴했기 때문에 새 유물에 대한 기대치는 낮았다”며 “돌무지 덧널무덤의 구조와 축조과정을 파악한 데 이번 발굴의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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