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공보실 김광희 부이사관
온화한 성품도 그렇지만 육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군 홍보요원이란 직분에 이르면 말 그대로 투철했다.
육군본부 정훈공보실에서 군무원으로 35년을 한결같이 지샜다.
30일 이사관으로 진급과 함께 명예퇴직하는 김광희(59ㆍ사진) 부이사관으로부터 젊음을 바친 국방공무원의 반생을 들어봤다.
“기쁨과 행복은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는 것에 있다는 어느 작가의 글이 새삼 실감납니다”
김 부이사관은 “어린 시절 군에 입대한 뒤 정훈병으로 복무한 인연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줄 미처 몰랐다”며 “오로지 육군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희망하면서 달려온 외길 인생이 때론 버겁기도 했지만 이제 돌아보니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쌓였다”고 말했다.
그는 1976년 5군단사령부 정훈병으로 육군에 들어섰다. 3년 뒤 병장으로 전역한 그는 함께 복무한 군 상사의 배려로 곧바로 육군본부 정훈감실 촉탁직으로 근무했다. 1984년 육군본부 비서실 보도과 주사(6급)로 특채되면서 군무원이란 천직에서 헤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대전 원정동에서 태어나 시골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가정형편이 워낙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대전 중앙극장통 전파사에 취직해 라디오 수리 기술 등을 배우며 생활고를 이겼냈죠”
가난과 맞서던 그는 논산훈련소에 지원 입대해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그 때 얼굴도 모르는 장교에 이끌려 군단 정훈부와 인연을 맺게 됐다. 앰프와 녹음기 등 장비 조작을 해보라는 지시를 따랐더니 정훈병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입대 전 전파사 근무 경험이 30여년을 헤아리는 군 홍보요원 재직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의 직분은 치열하게 경쟁하는 언론과 늘 접촉해야하는 긴장된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훈훈한 추억도 못지않게 담아냈다.
1998년 벌어진 어느 하사관에 얽힌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육군본부 사령실에 근무하는 상사 한 분이 무의탁 노인을 남몰래 극진히 봉양했어요” 동네 노인정에서 비롯된 입소문 때문에 알게된‘착한 군인’얘기는 김 부이사관의 노력으로 언론을 타게 됐다.
참모총장이 그 하사관을 불러 직접 표창을 수여하고, 중소기업사장이 언론사로 수소문해 자녀의 학비를 지원하는 등 당시 계룡대의 화제로 번졌다.
“정년을 1년 앞당겨 군문을 떠난다니 주변에서는 명예롭게 퇴직한다고 하지만 저는 정말 죄인의 심정입니다”
그는 “공식적인 후임자가 아직 없는 상태여서 임시로 임무수행자를 선정해 업무를 인계한 게 너무나 죄송하다”며 퇴직의 마지막 문턱에서도 정훈공보실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을 토로했다. 그는 대전 유성구 수통골 초입의 전세 아파트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다.
최정복기자 cjb@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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