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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전화기 속 그 방들

입력
2015.06.2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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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 요즘 세 사람 이상 만나는 약속 대부분은 ‘단톡방(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단체 대화방)’이 없다면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단체 모임이 있을 때면 회장이나 총무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앞장서서 여럿의 스케줄을 이리 저리 맞추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불과 몇 해 전인데 이제는 아득하다. 생각 난 김에 단톡방의 개수를 헤아려보니 열 개도 넘는다. 별 바깥활동 없이 살고 있는데도 사정이 이렇다.

이전에 보내던 유치원 담임선생님은 아예 반 아이들의 학부모 전원을 한 방에 초대해 각종 공지사항을 알려줬다. 원아들의 단체 사진도 거기에 올려줬고, 점심시간마다 식판을 찍어 무슨 반찬이 나왔는지 보여줬다. 처음 반찬 사진이 도착했을 때는 무척 반가웠다. 식단표에 적힌 메뉴가 실물로 조리된 모습을 보자 안심도 됐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서둘러 전송했다. 다른 학부모들도 앞 다퉈 이모티콘 가득한 감사인사를 전했다. 몇 시간 뒤에야 확인을 한 어떤 학부모는 고맙다는 인사에 이어 답이 늦어 죄송하다는 문구까지 붙였다.

그러다 아주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빠진, 엄마들만의 새로운 방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 방에서는 식단에 대해 차마 말하지 못했던 불만, 평소 아이들이 전해주곤 했던 유치원 생활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다. 기존의 대화방에서 한 사람만 빠진 셈이었는데 묘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그 사실이 상기될 때마다 이상하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분에 관한 어떤 나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그 무의식은 ‘뒷방’에 보내야 할 문장을 ‘앞방’에 내보내는 실수까지 만들었다.

상대가 내가 보낸 중요한 전언을 진즉 읽고도 아무런 답이 없을 때 또한 카톡방의 난감한 순간이다. 상대가 일부러 내 말을 무시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도 유쾌하지 않지만, 그가 혹여 답장 시간을 지체하며 고조되는 내 조바심을 이용해 이 국면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지 모른다는 의심이 떠올랐을 때는 꽤 속상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 비슷한 마음으로 행동했던 적이 있었기에 더 그랬을지 몰랐다.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70% 이상이라고 한다. 유소아들과, 아주 고령의 인구를 제외하면 전 국민 거의 전부가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게 분명하다. 현실에서의 체감도 그렇다. 어떤 화제가 나오면 각자 전화기를 꺼내 들고 확인을 하는 식사 풍경이 더는 낯설지 않다. 서로 찾은 정보가 달라 옥신각신하는 상황도 우리 집 만은 아닐 것이다.

70대 집안 어르신들의 스마트폰은 나보다 더 자주 울리고 특히 무슨 사회적 사건이 있을 때면 더 바쁘게 이런 저런 정보를 주고받으시는 눈치다. 이번 메르스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지역에 메르스 확진자가 있으니 알고 있으라거나, 코밑에 바셀린을 바르고 혹은 비타민을 많이 먹으면 메르스를 피할 수 있다는 식의 정보가 내 ‘단톡방’에도 부모님의 ‘단톡방’에도 모두 공평하게 전송됐다. 이에 대해 비로소 전 국민이 사회적 정보에 대한 균등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셀린이 최고라는 소식은 엄청나게 빠르게 전파되는데, 사실 그게 아니라는 정보는 왜 그렇지 않을까? 새로운 소외를 낳는 공간이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나는 왜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할까? 나는 왜 작은 전화기 속의 그 많은 방들에서 용감하게 퇴장하지 못할까?

휴 그랜트 주연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는 사람들이 섬이라면 그 섬들은 다 이어져있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그렇다면 혹시 그 수많은 ‘단톡방’들도 그런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이 불모의 시대, 그렇게라도 타인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서는 모두들 견딜 수 없어서인지도 말이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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