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달라졌다. 언제 아이돌그룹에서 활동해나 의문이 들 정도다. 배우로서 안착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소수의견’을 보고 있자면 조금씩 전진하는 윤계상의 성실한 면모가 진하게 배어 나온다. 보잘것없는 배경의 국선 변호사로 일하면서 돈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영화 속 윤진원은 윤계상의 현실과 포개진다. 여린 외모이나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주인공은 10년 넘게 화려한 성과 없이 카메라 앞에 꾸준히 서온 윤계상을 닮았다.
22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윤계상을 만나 ‘소수의견’과 그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수의견’은 2년 전 완성됐으나 개봉이 미뤄져 뒤늦게 빛을 보게 된 영화다. 철거현장에서 아들을 잃고 경찰을 살해한 철거민 재호(이경영)가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100원 소송을 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계상이 연기하는 윤진원은 이혼전문변호사 장대석(유해진)과 여기자 수경(김옥빈)의 도움을 받아 재호의 소송에 동참하는 인물이다. ‘소수의견’이 용산참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 또는 법조계의 부끄러운 면모를 드러낸다는 점 때문에 원래 투자배급사(CJ E&M 영화사업부문)가 개봉을 꺼려했다는 풍문이 그 동안 영화계에 나돌았다. ‘소수의견’은 시네마서비스가 지난달 배급권을 넘겨 받아 개봉 급물살을 타게 됐다. 다음은 윤계상과의 일문일답.
-오랫동안 영화의 개봉 기다린 심경이 어땠나?
“이유가 있겠지, 있겠지 그렇게 생각만 했다. 다음 작품을 촬영 중이라서 ‘소수의견’ 개봉만 마냥 기다리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하겠지라는 생각은 했다. ‘개봉할 거예요’라고 제작사 대표는 계속 말했으니까 시기상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감회가 남다르지 않나?
“그렇다. 개봉 소식은 한 달 전에 들었다. 너무 감사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2년 전 연기했을 때 기억이 잘 안 나서 마냥 좋은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김성제 감독님과 소속사(사람엔터테인먼트) 대표님께 전화해 영화를 한번만 봐 달라고 했다. 인터뷰 등을 할 때 자신감 있게 사람들을 대해야 할지, 부족했다고 말해야 할지 기준을 잡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기분이 좋다.”
-그래도 영화가 제때 나오지 못한 아쉬움이 진할 듯하다.
“2년 전에 개봉했으면 좀 더 열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지금은 좀 정돈된 느낌이다. (편집을 다시 하면서)완성도가 높아진 반면 냉정해졌다. 그래서 좀 더 잘된 것 같다. (유)해진이형도 그렇고 이경영 선배도 그렇고 더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말한다. 처음보다 편집이 좀 많이 됐다.”
-배우로서는 자랑스러워할 만큼 영화 완성도가 높다.
“감사하다. 열심히 했다. (유해진 이경영 등)좋은 배우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나에게 행운이었다. 조금 연기가 나아졌다면 그분들 덕분이다. 기대치보다는 더 잘한 것 같다. 그래서 감사하다. 정말 선수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살아 움직이더라.”
-왜 2년 동안 개봉을 못했다고 생각하나.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다. 내가 그런 것까지 관여할 입장은 아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나 다 확실하지 않은 것이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큰일 난다(웃음). 다 소문이니까. 그런 이유로 개봉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타이밍이 안 맞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배급사를 찾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
“그 분들(CJ E&M 관계자)은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좋은 타이밍에 하고 싶었다고. 우리는 빨리 하고 싶어했는데 조율이 안 된 것 같다. 어떻게 하든 열심히 해주는 배급사에서 한다면 좋다고 생각했다. (배급권이 넘어가)난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정치적 편견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얘기든 모티프가 있고 현실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자꾸 거기에 (정치적인 것을)끼워 맞추고 싶은 심리가 있다. 그러나 막상 ‘소수의견’을 보면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관객들이 생각할 테니까 그런 것에 대해 큰 우려는 없다. 한번 보시고 오해였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본인 연기 이력에 어떤 의미로 남을 영화라고 생각하나?
“어떤 분은 ‘네가 한 영화 중 제일 낫은 것 같아’라고 칭찬해주고, 또 어떤 분은 연기를 못했다며 꾸지람을 주기도 한다. ‘비스티보이즈’에 출연했을 때 당시 팬들에게 몰매 맞는 분위기였다. ‘왜 저희에게 이런 고통을 주냐’는 항의를 받았다. 지나고 나서는 영화계 모든 분들이 그 영화를 기억해준다. 영화배우의 의지를 봤다며. 10년 넘게 연기를 하고 보니 이제는 감히 어떤 배우의 연기를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배역이 맞아 보이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다. 연기 못한다는 이야기 들으면 이제는 그냥 흘려 듣는다. 잘하겠다는 의지만 떨어질 수 있으니까. 좋은 이야기만 듣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연기에 대한 평가는 참고는 하나 예전처럼 살을 깎아가듯 귀담아 듣지 않는다.”
-동명원작소설과 결말이 다르다
“개봉 1년 전과는 다른 결말이다. 나는 결말이 바뀌어서 아주 잘됐다고 생각한다. 원래 결말은 너무 강력했다. 윤진원이 국가를 상대로 굉장히 뼈있는 내레이션을 한다. 제가 하고서도 너무 오글거렸다. 배우로서는 멋있는 면이 있으나 영화의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 예전엔 배우적인 욕심이 강해 돋보이고 싶었는데, 출연 장면이 다 편집돼도 영화가 살아나면 더 좋다. 편집이 되어도 정말 괜찮다. 나는 이상한 장면은 잘라 달라고 한다. 억지로 넣으면 배우에게도 안 좋다. 관객들이 의아해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안 보여주는 게 배우에게는 좋다. 편집은 돼도 출연료는 주니까 상관 없다(웃음).”
-유해진과 연기 스타일이 다른데.
“사람의 결이 다르고 연기의 결이 다른 것은 확실히 있다. 해진이형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변호인 석에 셋(윤계상, 유해진, 이경영)이 앉아 연기할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때 좀 더 성숙해지지 않았나, 내 자신의 거품이 많이 빠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두 분에 비하면 나는 세발의 피이니까. 내가 ‘목숨 걸고 연기할 거예요’라고 말하면 ‘그래 그런 때가 있어. 그럴 때는 목숨 걸고 해’ 같은 좋은 말을 해주었다.”
-법정 장면이 많아 대사량이 만만치 않다.
“김성제 감독님이 연극 형식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연습을 많이 하며 준비를 했다. 함께한 배우들이 연기 잘하시는 분들이라 나도 욕심이 많이 났다. 연습을 많이 해서 툭 치면 대사가 나올 정도였다. 대사를 완벽하게 습득하니 몸 연기는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연극을 한다면 이런 느낌 아닐까 생각했고 카메라를 전혀 의식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연기에 대한 요즘 고민은 무엇인가?
“좀 더 자유롭게 연기하고 싶다. 연기를 더 갈고 닦고 도전적으로 하기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 며칠 전 마크 로스코 전시회를 갔는데 정말 대단하더라. 화가가 추구하는 단조로움에서 궁극적인 예술의 경지를 느꼈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들이 가히 좋지 않구나 생각했다. 단순해도 확실히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배우로서는 눈에 띄는 연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크지 않은가? ‘
“맞다. 하지만 그런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 따로 있다. 나도 눈이 회까닥 도는 그런 역할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
-요즘 열정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가 진짜 관심사다. 요즘 워낙 새로운 게 많아서 다 해보고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예전엔 연기, 연기 생각만 했는데, 요즘은 여러 가지가 많다. 반려견에 대한 관심도 크다. 최근 소품 가게를 열었는데 메르스 때문에… 인생 경험이라고 생각한다(웃음). 흐리고 맑고 그런 인생의 면모를 많이 느끼고 싶다. 안주하기보다 배우 일이 아니어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싶다. 그런 것이 쌓이면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 G.O.D 멤버랑 오랜만에 만나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다.
“지난 시절 나를 기억하고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얼마나 큰 재산이고 소중한 기억인지를 잊고 살았다. 옛 멤버와의 만남이 내 최근 생각에 많은 영향을 줬다. 나를 기억해주고 다시 나를 친근하게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재산이다. 다시 나의 스물 살 때를 찾는 것 같아서 좋았다. 대기실에서 같이 밥 먹고. 몸도 잘 안 움직여서 뒤뚱거리면서 서로 웃고… 태우 엉덩이를 찼을 때 태우가 ‘형 (결혼하고 애까지 있으니)내가 여기서 제일 어른이야’라고 반응하는 것도 좋았다. 식구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
-G.O.D멤버였던 박준형도 곧 결혼하다. 결혼 계획은 없나?
“ (고개를 젓고 웃으며)아유… 그게 계획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영화 흥행에 대한 기대는 없나?
“전혀 없다.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정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업계 분들의 냉정한 평가가 나에게 더 중요하다. 영화가 이상하면 말하기도 불편하고 죄송하다. ‘소수의견’ 같은 작품으로 인터뷰를 하면 일정이 많아도 피곤하지 않다. 언젠가는 좋은 성과로 나타날 것이다.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흥행이 잘 되지 않아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 같다. 흥행이 안 되도 연기를 계속하고 있다. 영화라는 장르와 배우라는 직업은 진실되지 못하면 금방 들통 난다. 진실되면 10명 중 1명은 계속 잘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응원을 해주고 작품을 계속 준다. 그러다 어느덧 서른 여덟이 됐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감사할 뿐이다. 정말 감사할 뿐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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