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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보호에 한정…모티브 플롯 표절은 제재 근거 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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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보호에 한정…모티브 플롯 표절은 제재 근거 희박

입력
2015.06.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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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가 이슈가 되며 문단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의 표절 의혹이 거론되고 있다. 문제가 된 신씨의 ‘전설’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연속된 몇 문장을 약간 변형한 것이어서 누가 봐도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작가와 평론가들은 “확연히 표절이 드러나는 표현 외에 티가 안 나는 설정이나 모티브, 플롯 등의 표절이 더욱 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는 명확하지 않고 법적으론 최소한의 기준만 적용되는 편이다.

표절 여부를 판가름하는 법규는 저작권법이다. 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의 ‘창작과 표절의 구별기준’에 따르면 현 저작권법은 아이디어와 표현을 구별, 창작적 표현은 보호하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보호하지 않는 ‘아이디어 표현 이분법’에 입각하고 있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가 명확하진 않지만 통상 제목이나 주제는 아이디어에, 작가의 상황 묘사나 대사 등은 표현에 해당한다. 줄거리, 등장인물, 사건전개는 아이디어와 표현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저작권법이 아이디어를 보호하지 않는 이유는 창작자들의 발상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하게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작가들은 천차만별의 표현을 사용할 수 있고 법은 아이디어보다 저자의 독창적 표현을 보호하는 데 주력한다. 법 취지에 따르면 문예저작물에서의 표현은 사실저작물이나 기능저작물에 비해 창작성이나 예술성이 높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보호받아야 한다. 물론 얼마나 독창적이냐가 중요한데, 이를테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랑에 빠지게 됐다” 같은 일상적 표현엔 표절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논란의 핵심 표현인 “기쁨을 아는 몸”이라는 구절은 표절 책임을 물을 여지가 상당하다. ‘우국’은 1936년 일본 육군 장교들의 쿠데타를, ‘전설’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고뇌하는 남자와 젊은 아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구조의 유사성도 제기됐지만 법적으로 표절로 보기는 애매하다.

창비 출판사는 애초에 “해당 대목이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며 표절 의혹 제기를 폄하했는데 저작권침해 여부는 질적인 개념이지 분량은 문제가 안 된다. 국내에는 판례가 없지만 미국에서는 영화 선전문구 한 줄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인정한 판례가 있다.

하지만 문인들은 학술논문처럼 “6개 단어가 연속으로 나열될 경우 표절로 본다”는 명확한 판례가 없는 상태에서 검찰 고발에 이른 신씨 표절 문제가 진흙탕싸움으로 번질까 우려하고 있다. 법리적 공방에 매몰돼 신씨 한 사람에 대한 낙인 또는 면죄부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인들은 검찰이 수사에 나설 게 아니라, 작가적 양심과 평론의 자정기능을 환기함으로써 문단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은수 문학평론가는 “표절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지만 표절 제기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다”며 “문학은 특히 패러디나 오마주처럼 다양한 기법이 활용되기 때문에 판단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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