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구제금융 협상 난항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커진 그리스에서 사람들이 은행으로 몰려 대량으로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그리스로 떠나려는 여행객들에게 현금을 두둑이 챙겨가라는 영국 여행사협회(Abta)의 조언이 나오는 등 각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이 벌이는 부채 협상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그리스 은행에서 돈을 빼내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이틀 간 그리스 은행에서 빠져나간 예금은 각각 12억유로(약 1조5,000억원)와 15억유로. 지난 한 주에만 총 50억유로에 달하는 예금액이 대거 인출됐다.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정권을 잡은 올 1월 이후 최대 규모다.
22일 유럽연합(EU)이 긴급 정상회의를 소집해 관련 사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금융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주에 인출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5개월간 끌어온 구제금융 협상 시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데다, 18일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럽 각국 재무장관들에게 “그리스 은행들이 다음 주 월요일엔 문 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압박하며 분위기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의 유동성 위기에 유럽중앙은행(ECB)는 ‘긴급유동성지원’(ELA) 금액 상한을 상향조정해 지난 17일 11억 유로(약 1조3,000억원) 올린 데 이어 전날 18억 유로(약 2조3,000억원)를 더 증액했다.
구제금융과 별개인 ELA는 시중 은행이 자금난을 겪을 우려가 있을 때 유로존 각국 중앙은행이 ECB의 승인을 받아 공급하는 것으로 ECB가 평소 적용하는 금융 프로그램이다. 그리스에서 예금 인출이 급격히 늘어나 대출기관들이 긴급 자금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지자 ECB는 그동안 꾸준히 ELA 상한선을 확대했다고 FT는 전했다.
여행, 금융업 등 각계는 그리스의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Abta는 관광객들이 여행 중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보통 현금을 미리 바꿔가지 않지만, 현재 그리스 사태를 볼 때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며 현금을 충분히 챙겨 떠나라고 조언했다. 실제 그리스의 현금인출기(ATM)가 현금 부족으로 작동을 안 하는 것은 물론 은행이 예금을 내어줄 수 없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외환 전문기관 렉스턴 FX의 창업자 루퍼트 리 브라우니도 “그리스 호텔이나 식당은 여전히 신용카드를 받기 때문에 여행객이 크게 당황할 일은 없다”면서도 “만일에 대비해 평소보다 더 많은 현금을 지참하는 편이 낫다”고 설명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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