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발생 한 달. 중동발 바이러스는 도심 일상을 살풍경으로 바꿔 놓을 만큼 강력했다. 물론 과도한 걱정은 금물이지만 ‘메르스 노이로제’ 현상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경기 평택시 한 고교에서 근무하는 김현지(26ㆍ여) 교사는 평택성모병원이 메르스 발병의 진원지라는 소식이 보도된 뒤 지금까지 용인에 있는 본가를 찾지 않고 있다. 김씨는 21일 “이전에는 주말마다 내려갔는데 나이 드신 부모님뿐 아니라 언니와 남동생까지 함께 살고 있어 혹시나 해서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메르스 확산이 본격화한 이달 1~15일 음주 교통사고 건수는 603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1,025건) 41.2%나 감소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검문 방식의 음주 단속을 중단했음에도 전염병 공포로 외출을 삼가고 접촉을 꺼리는 생활 패턴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웃 간 문턱은 더욱 높아졌다. 허서문(26ㆍ여)씨는 “가뜩이나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마스크 낀 사람들이 늘다 보니 이웃인데도 당연하다는 듯 외면하고 지나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아이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던 놀이터는 텅 비었다. 세 살 아들을 키우는 윤모(43)씨는 “사람 마주치는 걸 최대한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비롯한 가족 전부가 집 안에서 대부분 일을 해결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피와 배제의 일상을 파고드는 메르스 얌체족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하철에 탑승한 뒤 기침을 하면 전방 3m 사람은 다 피해서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등의 글이 십여 개 올라왔다. 경찰의 음주단속 완화 소식에 술을 마신 채 운전대를 잡기도 하고 허위로 감염 사실을 보고한 뒤 무단 결근해 구급 요원을 출동케 만든 이들도 나왔다.
일부 시민은 썰렁해진 거리를 보고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나 영화 ‘감기’의 내용처럼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인간성을 회복하지 못할까 걱정하기도 한다. 소설에선 눈이 머는 미지의 전염병이 돌아 도시에 인적이 끊기고, 영화에선 위정자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소방대원과 연구원 등이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혜미(26ㆍ여)씨는 “웃음기 사라진 거리, 의료진과 소방 공무원들의 자녀를 유치원과 학교에서 따돌리려는 분위기에서 소설과 영화의 세기말적 모습이 오버랩이 됐다”고 씁쓸해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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