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전염력, 변이 아닌 실기 탓
평택성모 병동으로 격리 넓혔어야
삼성서울병원서도 똑같은 실수
당국은 실책 되풀이 후 뒷북 대책
지난 한달 간 대한민국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라는 신종 감염병으로 집단적인 공포와 충격에 빠졌다. 그 이름처럼 환자의 98%가 중동에 몰려있는 이 병이 유독 한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유는 뭘까. 19일 현재 166명의 환자가 발생한 우리나라는 세계 2위 메르스 발병국이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를 키운 건 높은 전염력도 바이러스 변이도 아닌, 실기(失機)였다. 메르스 발병 후 확산을 막을 기회는 4번이나 있었다. 특히 평택성모병원에서 놓친 2번의 기회와 삼성서울병원으로 공이 넘어간 뒤 날려버린 2번의 기회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앞의 실수만 제대로 새겼어도 삼성서울병원이라는 더 커다란 ‘메르스 온상’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4번의 기회를 짚어본다.
▦5월20일…평택성모병원 같은 병실만 한정, 병동으로 했다면
지난달 20일 국내 첫 메르스 환자(68)가 확인되자 질병관리본부는 이 환자가 거쳐간 4개 병원의 의료진과 환자, 가족 등 64명을 격리조치 했다. 이 환자와 ‘2m 내에서 1시간 이상’ 머물렀는지가 기준이었다. 1번 환자가 5월 15~17일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 역시 이 기준대로 2인용 병실을 함께 쓴 환자와 보호자만 격리했다.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21일 첫 메르스 기자회견에서 “광범위하게 격리 범위를 설정했다, 환자에게 밥을 가져다 준 급식요원까지 포함시켰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인 28일, 1번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있었던 입원 환자 중에서 메르스 환자(6번 환자)가 발생했다. 격리 범위 밖에서 처음으로 환자가 나오자 보건당국은 ‘전면 재조사’를 선언하고 격리 범위를 병동 전체로 확대했지만, 이미 이 병동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퍼져나간 뒤였다. 가장 많은 환자를 감염시킨 ‘슈퍼 전파자’ 14번(35) 환자는 전면 재조사 전날인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했으며, 이틀 뒤인 29일에야 보건당국에 발견됐다. 이 병동에서 감염된 환자, 보호자, 의료진만 24명이나 된다. 격리 대상이 아니었던 이들은 곳곳에서 3차 감염을 일으켰다. 처음부터 격리범위를 병동으로 설정해 이들을 격리했다면, 메르스는 평택성모병원 안에서만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6월 5일…사태 보름 후에야 공개된 평택성모병원
지난달 28일 평택성모병원 같은 병동에서 처음으로 환자가 발생했을 때 보건당국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조치 중 하나는 병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었다. 전면 재조사를 시작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거나 누락된 환자들이 있었고, 환자 보호자나 병문안을 온 사람들은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병원 이름이 공개되면 전국의 의료진이 환자 중 평택성모병원을 거쳐 왔는지 확인할 수 있고, 방문객들도 보건당국에 신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1번 환자가 입원 및 내원했던 병원의 이름과 지역을 모두 비공개했다. 해당 병원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지역주민들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전문가들은 격리 밖 환자가 처음 발생했을 때부터 병원 공개를 촉구했다. 병동 환자 및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보건당국이 모두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고, 병원 이름이 공개가 돼야 지역자치단체 등과 긴밀히 공조 해 전파를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정확한 정보 전달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최소한 의료진에게만이라도 공개하라고 촉구했으나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보건당국은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다 1번 환자 발생 보름이 지난 후인 5일에야 평택성모병원의 이름만 공개했다.
▦5월 29일…삼성서울병원에서 되풀이된 좁은 격리 범위
지난달 29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3일째 입원 중이던 14번 환자가 1번 환자 접촉자라는 것이 확인되자, 보건당국과 삼성서울병원은 14번과 접촉한 격리대상자를 가려냈다. 당시 응급실 내원 기록 등을 바탕으로 가려낸 사람은 환자 675명, 의료진 218명이었다. 하지만 보호자와 방문자들은 전원 누락됐고, 공간은 응급실로만 한정됐다. 일부 환자와 병원 종사들이 누락된 것도 뒤늦게 밝혀졌다.
이에 따른 피해는 막대했다. 협력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격리 대상에서 제외된 이 병원 환자 이송요원인 137번(55) 환자는 14번과 접촉 한 뒤 증상이 나타난 후에도 9일 간이나 업무를 계속했다. 또 76번(75ㆍ사망) 환자는 14번과 이틀이나 함께 입원했었지만 격리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아, 결국 강동경희대병원과 건국대병원의 의사와 다른 환자를 감염시켰다. 응급실로 한정했던 격리 공간 역시 외래 환자와 보호자가 감염된 데 이어 19일에는 입원 환자의 보호자까지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평택성모병원의 동일 병실만 격리 기준으로 한 데 대해 지난달 31일 “(격리 범위를) 조금 협소하게 짰던 것이 사실”이라며 사과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보건당국은 삼성서울병원의 격리범위를 넓히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실수를 반복했다. 17일에야 보건당국은 “14번, 137번 환자가 있었던 시기에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한 5만여명을 전수조사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조치는 지난달 29일에 나왔어야 했다.
▦6월 7일…환자들 전국으로 퍼진 후에야 공개된 삼성서울병원
7일 보건당국은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메르스 환자 발생 및 경유 병원 24곳을 공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확진 판정을 받은 이 병원 의사(35번 환자)가 1,565명을 접촉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뒤 서울시민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이날 “접촉자 추적 관리만으로는 상황을 해결하기 어렵다 됐다”며 5월 말부터 나온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했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생한 환자 17명을 비롯해 전체 환자가 64명이나 발생했으며 사망자도 5명이나 나온 시점이었다.
정부의 뒷북 공개 전에 이미 환자들은 전국으로 퍼져나간 상태였다. 부산의 첫 메르스 환자는 이 병원 문병객이었고, 경남 창원의 첫 환자는 외래 진료를 받았던 환자였다. 또 외래진료를 동행했던 보호자는 증상이 생긴 후 제주도 여행까지 다녀왔다. 이들은 메르스 환자 접촉사실을 몰라 여러 병원을 다니고 대중시설을 이용해 전국에 메르스 공포를 퍼트렸다. 76번 환자가 강동경희대병원과 건대병원을 방문한 것은 명단 공개 이틀 전으로, 명단 공개만 빨리 했어도 확산은 방지할 수 있었다. 결국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는 전체 감염자 166명의 절반 가량인 82명으로 늘었다. 1차 진원지인 평택성모병원 사례를 겪으며 격리 범위와 병원이름 공개의 중요성을 깨닫고도, 삼성서울병원에서 똑 같은 실책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이다. 실수와 실책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보건 당국은 아직 뚜렷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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