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일 이후에도 주청사에 남부연합기 계속 내걸려
범인 루프 "흑인에게 총 쏘러 왔다" 인종 증오범죄 정황 속속 드러나
"이번 사건은 무분별한 살인" 오바마, 총기규제 필요성 강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교회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딜런 루프(21)의 범행 동기가 백인우월주의 때문이라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루프의 범행이 지역사회에 내재한 인종갈등의 불씨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abc 등 미국 언론은 18일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찰스턴의 흑인교회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 한 17일 이후에도 주청사에 남부연방기가 내걸린 것을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비판이 쏟아졌다고 보도했다.
남부연방기는 미국 남북전쟁(1861~1865) 당시 노예제도를 지지한 남부연합 정부의 공식 국기로, 미국에선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의 상징이다. 그럼에도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유일하게 주청사 밖에 이 깃발을 게양하고 있다. 루프도 자동차에 남부연방기가 새겨진 번호판을 달고 다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니키 헤일리 주지사는 그러나 “남부연방기를 바꾸는 사안은 주지사가 아닌 의회의 권한”이라며 게양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찰스턴은 특히 흑인 노예와 백인 농장주가 대립하던 흑백갈등의 뿌리가 남아있는 곳이다. 정의를 위한 흑인 변호사회 회장인 말릭 샤바스는 “이곳이 부유하긴 하지만 분열이 남아있다”며 “백인은 꼭대기에, 흑인은 바닥에 있는 도시”라고 꼬집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루프는 범행 당시 “당신들은 우리 여성들을 성폭행했고 우리나라를 차지했다. 당신들은 이 나라에서 떠나야 한다, 나는 흑인에게 총을 쏘러 왔다”고 말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루프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선 그가 입은 옷 가슴에 과거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 인종차별 정책)를 시행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로디지아(현 짐바브웨)의 국기가 달린 사실도 확인됐다.
루프가 마약에 손을 댔다는 증언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가 확인한 법원 기록에 따르면 루프는 아편 의존증 치료제인 ‘서복손’(Suboxone)이라는 약을 처방전 없이 소지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었다. 루프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대부분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이스트오버에서 학창 생활을 했으나 고교 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현재 직업이 없으며 학창 시절 친구들과는 연락이 뜸한 상태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흑인으로, 주상원의원이기도 한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 등 목사 3명이 포함됐다. 피해자 연령대는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핑크니 목사는 23세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원(민주당)에 당선돼 흑인 최연소 주의원의 기록을 세웠고, 2000년에는 주상원의원이 됐다. 2010년 사건이 발생한 교회에 부임했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그와 친분이 있다고 언급한 지역 내 유명 인사였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난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을 “무분별한 살인”으로 규정하고 총기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수의 희생자를 낸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우리가 위안과 평화를 찾는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특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구나 다른 사람을 해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아무 제약 없이 총을 손에 쥘 수 있어 무고한 희생자들이 다시 한 번 생겼다”며 “이런 종류 사건은 다른 선진국에선 우리처럼 빈번히 일어나지 않는다”고 대책 마련 필요성을 주장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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