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끼던 찌질함의 아이콘이 신분상승을 했다. 무려 YG 소속 연예인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몇 천 명을 뚫고, 미국에서, 저 멀리 호주 산골에서 날아온 애들이 우승을 한 뒤에야 갈까 말까한 그 YG 엔터테인먼트 말이다. (게다가 GD도 지나가면서 보고 그러려나 생각하면 부러워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세상에. 우리 병재가, 우리 병재가 출세를 하다니.
스물일곱의 유병재. 그는 방송작가 겸 코미디언이다. SNL 코리아에서 찌질한 매니저 역할(유병재 활약상 ▶ 동영상 모아보기)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SNS로 퍼진 그의 ‘말’에 반했다. 그에겐 전설의 짤방들과 함께, 몇몇 어록이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에서 유병재 ‘청춘 공감 어록’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다. 6월 8일부터 10일까지 20대 남녀 1043명을 대상으로 했다. 1위는 뭘까? 40% 가까운 사람들이 1위를 ‘이 말’로 꼽았다. (참고로 내 예상은 틀렸다.)
1위는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가 차지했다. 39.3%가 이 글귀에 가장 공감했다. 2위는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 (29.7%)’였고 그 뒤를 ‘네가 더 힘든 걸 안다고 내가 안 힘든 건 아니다(19.9%)’가 이었다. (‘경력직만 뽑으면 신입은 어디 가서 경력을 쌓으란 얘기냐’, 난 이게 어록 순위권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다.)
유병재의 어록을 살펴보면 어느 것도 하하 호호 즐거워서 웃을 만한 글귀는 아니다. 사람값이 헐값이라고 비판하고 미화된 청춘 상에 반발하고, 다른 사람 사정을 생각하기엔 내 코가 석자라고 얘기한다. 웃고 싶은데 울게 되는 ‘루저’, ‘외톨이’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유병재가 그냥 웃겨서가 아니라 그가 ‘진짜’라서 좋다.
오늘 내가 겪은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해준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열면 열불이 난다. 온통 인턴 아니면 경력직 타령이다. 그렇게 짜증날 때 유병재가 시원하게 욕해주면 속이 풀린다. 경력직만 뽑으면 신입은 어디 가서 경력을 쌓으란 말이냐고 소리 질러 준다. TV 속의 캐릭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TV 밖의 20대 유병재가 TV에도 나올 뿐이다. 그는 그의 정체성 그대로 ‘웃픈(웃기고 슬픈)’ 이야기들을 꺼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인다. 힘든 현실을 다큐가 아니라 예능으로 뽑아내는 게 그의 능력이다.
유병재는 좀 다르다. 요즘 따라 소탈하게 와 닿는 ‘청춘’의 이미지가 잘 팔리는 건 사실이다. 유병재가 아니더라도 별별 알바를 다 섭렵했다는 AOA 초아나, 시급 더 달라고 애교 부리던 걸스데이 혜리도 ‘평범한 청춘’의 아이콘 자리를 넘본다. 알바 구인구직 사이트 광고도 찍고 그런다. 그렇지만 찌질함을 무기로 삼는 사람은 없다. 평범한 B급 정서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아이콘. 유병재 뿐이다.
YG 엔터테인먼트의 양 사장님도 나만큼이나 유병재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양이다. 통 크게 YG 사옥 근처에 40~50평대 아파트를 얻어주라고 했다고 한다. 유병재는 방송에서 보증금 2000만원에 45만 원짜리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마 양 사장님 보시기엔 월세 방보다 50평대 아파트가 더 나을 거라 생각하셨을 거다. 전용 차량도 준다. 그런데 난 50평대 아파트에 살고 전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유병재가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유병재의 출세는 좀 비현실적이다. 재밌게 사는 찌질이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형기획사에 들어가서 아파트도 얻고 차도 얻고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하게 됐다. 유병재는 좋겠다. 부럽다. 그리고 그가 부러운 게 이상하다. 마치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사라진 느낌이다. 친구를 잃은 것 같고 막 그렇다. 슬프다.
현실 찌질의 아이콘 유병재는 떠났지만 그가 욕한 현실은 아직 그대로다. 그가 보여준 진짜‘들’의 삶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사람값을 헐값으로 만드는 최저시급은 어떤가. 6월 18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용자위원 측은 최저임금 0% 인상을 제안했다. 보통 동결이라고 적는다. 0%란 수치가 너무 충격적이라 0%라 적었다. 6월 말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만약 많이 올라 7% 오르면 390원 오르는 건데 서울 지하철비, 버스비도 150원, 200원씩 오른다. 내년에도 사람값 여전히 헐값일 수 있다.
열정페이는 말하기도 지겹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지난 5월 28일 발표한 고용노동부의 ‘대학생의 일 경험 참여 실태조사 및 정책 과제’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4명은 급여도 안 받고 기업에서 인턴을 했다. 2명 중 1명은 복사하고 문서 입력하는 단순 반복, 보조 업무만 주구장창 했다. 공짜 타자기 한 대 들여놓은 셈이다. 아직 같이 욕할 게 많다. 수두룩하다. 이 웃긴 현실을 풀어내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가 50평짜리 아파트로 떠난다.
그는 이제 어떤 이야기들을 하게 될까? 나는 궁금하고, 또 조심스럽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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