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손동현씨 이색 시도 눈길
서울시립미술관의 지드래곤 기획전 ‘피스마이너스원’ 전시장에는 밤갈색 한지 위에 그린 동양화풍 작품이 유난히 눈에 띈다. 조선 후기 유행한 ‘문자도’ 양식을 차용했는데 자세히 보면 영문자 ‘HIPHOP(힙합)’ 위에 유명 힙합 음악가들의 얼굴이 시대순으로 나열돼 있다. H에는 1990년대 미국 힙합계를 풍미한 노터리어스 B.I.G.와 투팍, I에는 힙합 그룹 우탱클랜, 마지막 P에는 흑인 음악 피비알앤비 음악가 드레이크ㆍ위켄드ㆍ프랭크 오션ㆍ미구엘이 나타난다. 2013년 ‘컨트롤’로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켄드릭 라마의 얼굴도 보인다.
화가 손동현(35)의 ‘힙합음악 연대기’다. 손동현은 “지드래곤이 영향을 받은 음악가 목록을 받아 그렸지만 나 역시 이 음악가들 모두 좋아한다”며 “프로 음악가와 만나 만족스런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손동현은 서양 만화나 할리우드 영화 속 팝 아이콘과 동양화를 접목시킨 그림을 꾸준히 그려왔다. 소재와 형식의 이질적 조합도 신선하지만,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그림 속에 숨은 요소를 해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2008년에는 마이클 잭슨의 모든 싱글 발표곡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초상화 연작을 그렸는데, 잭슨에게 ‘팝의 황제(King of Pop)’라는 호칭이 붙는 1989년을 기점으로 그가 앉은 의자가 왕좌로 바뀌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최근 손동현은 동양화의 전통 소재를 활용해 자신이 창작한 영웅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 신사동 갤러리2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잉크 온 페이퍼’에는 매화, 서예, 산수화를 의인화한 세 인물을 소개했다. 매화도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외계인 ‘그루트’를 연상시키는 나무 괴인으로 변신했다. 사람 인(人)자로 구성된 몸체에 눈 목(目), 코 비(鼻), 입 구(口)를 달고 있는 ‘더 그래피(서예)’는 의성어와 의태어로 공격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족자 일곱 폭에 걸쳐 그려진 ‘마스터 잉크’는 영화배우 주윤발을 모델로 한 무림 고수인데, 오른쪽 팔은 산수화처럼 서서히 흩어지고 왼쪽 팔은 글자 모양으로 날카로워진다. 동양의 수묵 산수화가 그림으로 은은한 정감을 끌어올리고 글자로 그 의미를 해명하는 구성이라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손동현은 “예전에는 기존 이미지를 가져와 편집하는 작업에 그쳤다면 지금은 작품 자체에 다양한 정보를 넣어 그림(한국화)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재미난 크로스오버를 통해 젊은 층에게 동양화를 대중화시켜야겠다는 사명감이라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대답이 명쾌하다. “동양화를 전공했으니 동양화를 그리고, 만화를 좋아하니 차용하는 것뿐입니다.” 7월 11일까지. (02)3448-2112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