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우호지분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물산의 자사주를 매입하며 백기사를 자처한 KCC가 그간의 투자이력으로 새삼 주목 받고 있습니다. KCC가 2000년대 초반부터 위기에 빠진 기업들의 백기사 역할을 하며 지분을 매입해 취득 원가의 3배에 달하는 차익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KCC가 해당 기업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함과 동시에 투자수익까지 거둬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주식투자로 기업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주주들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은데요.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CC는 삼성물산의 자사주 전량(899만577주)을 6,743억원에 사들여 5.76%의 지분을 매입했습니다. 이 밖에도 KCC는 현대중공업(5.31%), 현대자동차(0.32%), 현대산업개발(2.5%), 현대종합상사(12%), 한라(11.43%), 제일모직(10.19%ㆍ이상 금융감독원 1분기 공시 기준)을 포함해 총 13개 상장사 지분을 갖고 있죠. 최근 취득한 삼성물산을 제외하고 12개 상장사 지분의 취득원가는 8,943억원으로, 현재 1분기 말 기준 시가가 3배 이상 증가해 2조8,744억원에 달합니다.
KCC의 주식투자는 그간 위험에 빠진 기업들의 백기사를 자처하며 이뤄졌습니다. 특히 초반에는 현대그룹을 중심으로 한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는데요,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막내 동생인 정상명 KCC명예회장이 형님을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죠. 대표적인 예가 2003년 현대그룹 계열사 경영권 안정을 위해 현대중공업, 현대산업개발, 현대자동차, 현대종합상사 지분을 사들인 겁니다. 그 중 현대중공업의 경우 2010년까지 지분 8.2%를 2만4,000원대에 매입해 2010년, 2012년 두 해에 걸쳐 각각 주당 24만원, 28만원에 매각했습니다. 무려 6,200억원의 차익을 남긴 셈이죠. 이 때 팔았던 현대중공업 주식의 일부는 작년 12월 주당 10만원 대 초반 가격에 3,000억원 규모로 다시 사들였습니다.
이후 2012년에는 금융산업분리법에 따라 제일모직(당시 에버랜드) 지분을 5% 이내로 낮춰야 했던 삼성카드의 우군으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KCC는 삼성카드의 제일모직 지분 17%를 주당 3만6,000원 선에서 매입했습니다. 그리곤 작년 제일모직 상장 때 6.81%를 공모가인 5만3,000원에 처분했죠. 현재 보유한 10.19%는 17일 기준 시가가 주당 17만4,500원으로 취득 원가의 약 5배에 달합니다. 이처럼 KCC는 현대그룹 외에도 위험에 처한 기업들에 백기사를 자처하며 관계를 다지는 한편 이렇게 매입한 주식을 추후 비싼 값에 처분했다가 싼 값에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차익을 실현했습니다.
번번이 고수익으로 주식투자에 성공하긴 했지만 한편에선 부정적인 시각도 제시됩니다. 지나치게 주식투자에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이번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에서처럼 약 7,000억원짜리 빅딜을 진행하면서도 주주들에게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데 대한 주주들의 반발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아무래도 대외적인 변수가 전보다 더 많고 복잡해진 상황에서 주주들이 갑작스레 불확실성을 떠안은 것인 만큼 경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반면 최근 삼성물산과의 합병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데다가 KCC의 주식투자 규모가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합병은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합병 시 도리어 주주가치 상승 모멘텀을 누릴 수 있다”(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거나 “기업의 본질을 크게 흔들만한 ‘조’ 단위의 투자도 아니었고, 기존 투자금을 현금화 해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현금흐름에도 문제가 없다” (박형렬 KDB대우증권 연구원)는 겁니다.
김진주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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