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씨 창비 의혹 부인에 비판 분위기
창비 "두 작품 유사성 거의 없다"
"순수 표절… 절필까지 고려해야"
"대형 작가엔 침묵 풍토 고칠 시점"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한국 문단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17일 신씨와 문학출판사 창비가 전날 제기된 표절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표절을 알고도 쉬쉬하는 문단 풍토가 이번 사태를 빚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국 문단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권성우 문학평론가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이응준 소설가를 지지하며 과거 표절 논란과 달리 이번엔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씨는 “이응준 소설가가 커다란 용기를 내서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다”며 “1999년 무렵 비평가 박철화씨를 중심으로 신경숙 표절에 대한 지적이 있었을 때는, 예로 든 텍스트나 논지가 좀 모호하고 애매한 대목이 있어서 쉽게 이렇다 저렇다고 판단하기 곤란”했지만 “이번 이응준씨의 글은 상당히 명쾌하고 설득력이 있어서 쉽게 무시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썼다.
신씨의 표절 의혹은 1999년 박철화 비평가와 한겨레신문에 의해 처음 제기됐으나 신씨가 표절이 아니라고 반박한 뒤 흐지부지됐다. 신씨는 2004년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을 지내고 2008년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문단 권력의 자리를 유지했다.
문단 관계자들은 과거 숱한 표절 의혹이 조용히 지나간 이면에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메이저 출판사 간의 유착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명인 문학평론가는 “이번 일은 작가가 절필을 고려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며 “비평가, 출판사, 언론 중 누구도 베스트셀러 작가를 건드리지 못하는 구조 때문에 이런 무모하고 위험한 일들이 자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절을 짚어주고 논쟁을 확산시켜야 할 비평가들 대부분이 메이저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문예지의 동인이나 필자로 소속돼 있어, 책 판매를 위해서라도 비평가들은 작가에 대해 일체의 쓴 소리를 하지 못하는 구조가 정착됐다는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 등으로 해외에서도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신씨는 출판사 매출의 일등공신이자, 각종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출판사든 작가든 평론가든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김씨는 “비평가들이 비판하지 않고 해설만 하니 작가들은 스스로의 오류를 깨닫지 못하고 결국 표절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며 “작가 개인의 윤리 문제로 치부하고 잘라낼 것이 아니라 출판사와 평론가들의 반성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99년과 비교해 부쩍 커진 신씨의 위상도 사태의 심각성을 부추긴다. 더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중의 의견 표출과 토론이 전에 없이 활발한 지금, 파장이 문단 내부의 갑론을박에 그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10년 전 신경숙의 작품은 한국문학 장 안에서만 논의됐지만 현재는 20여 개국에 작품이 번역되는 작가로, 한국 문학의 위상과 건강함을 대표하는 위치가 됐다”며 “과거 표절시비를 보면 윤리적 규탄 외에 당사자에 대한 책임 있는 조처나 사과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나 이번엔 그때와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한국 문단에 일종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실 비평과 주례사 비평으로 표상되는 소위 ‘침묵의 카르텔’이 이번 일을 통해 변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문단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문단의 카르텔을 더 공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면 한국 문학은 안으로 더 곪아들어갈 것이란 우려다. 권성우 평론가는 “이 문제를 제대로, 면밀하게, 정직하게 응시하지 않고는 한국문학이 조금도 나아갈 수 없다”며 “이번 사건은 한국 문단과 평단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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