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번 환자 지하철 이용 알려지자 승객들 마스크에 면장갑까지 착용
정부 부실 방역체계 혁신 요구 빗발… "당장 지하철 폐쇄를" 격양된 반응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137번 환자가 증상 발현 후에도 열흘가량 서울 지하철을 이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교통에도 공포가 몰아치고 있다. 시민들은 환자 관리에 무능을 드러낸 정부를 성토하며 방역체계의 근본적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이송요원으로 근무하는 137번 환자는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 이후인 3~10일 자택 근처인 서울대입구역(2호선)에서 환승역인 교대역을 거쳐 일원역(3호선)까지 출퇴근을 했다. 한 번 이동할 때마다 평균 40여분이 걸리는 구간이다. 아직 버스나 지하철을 함께 이용했다가 감염된 환자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우려는 이미 바이러스처럼 시민들 사이로 파고든 모습이었다.
17일 오전 일원역에서 만난 직장인 김형석(39)씨는 마스크에 흰색 면장갑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로 출근하는 김씨는 “삼성서울병원이 인근에 있어서 마스크는 줄곧 착용해 왔는데, 137번 환자와 출ㆍ퇴근 동선이 겹친 사실을 알고 나선 장갑도 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출ㆍ퇴근 동선이 겹치는 시민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다. 일주일에 3,4차례 동작구 노량진 방면으로 가는 지하철을 탄다는 박승혜(28ㆍ여)씨는 “일부러 사람이 많이 몰리는 출ㆍ퇴근 시간을 피해 지하철로 이동하곤 했는데, 20일 가까이 조심하려고 한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고 자조했다.
당장 지하철을 폐쇄해야 한다는 격앙된 반응도 나왔다. 사당역에서 탑승한 박정철(41)씨는 “메르스 감염자가 버젓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뒀다는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 이 순간에도 또 다른 감염자가 있을지 모르는데 당분간 대중교통 운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서민의 발인 대중교통을 대체할 수단이 현실적으로 없으니 찝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 분위기가 더 우세했다. 물론 이들도 “만일을 대비해 지하철을 병원보다 강력히 소독했다”는 서울시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 만난 김모(43)씨는 “137번 환자가 지하철을 타고 다닌 지 벌써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주의를 기울여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푸념했다. 서초역에서 탑승한 정찬열(34)씨 역시 “뒤늦게나마 서울시에서 역사 방역소독을 실시했다고 하니 차라리 지금은 서울시 말대로 안전하다고 믿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이미 대중교통을 기피하는 추세는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14일 기준 대중교통 이용객은 569만8,000명으로 2주 전인 지난달 31일과 비교해 159만9,000명(21.9%)이나 줄었다. 교통 수단별로 보면 지하철 승객은 79만2,000명(23.6%), 버스는 80만7,000명(20.5%)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김종은 서울대입구역장은 “육안으로는 137번 환자의 동선이 밝혀진 지난 16일 출근길 이용객 수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면서 “메르스 사태 이후 이용객이 계속 감소하고 있어 137번 환자의 동선 공개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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