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딘 나우스 감독의 ‘나의 사랑스런 아빠’는 그녀의 실제 아버지를 취재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감독의 아버지는 1960년대 레바논에 학교를 세웠다. 서양의 신식 학문과 예술, 스포츠를 가르쳤다. 자유로운 학풍을 가진 학교였다. 하지만 그가 평생 교육자로 헌신해온 학교는 재정난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풀과 나무, 햇살이 가득했던 학교 주변은 무허가 날림 공사로 거대한 공사장과 다름 없게 되었다. 수업 중에도 공사 소리에 말 소리가 묻힐 정도다. 학생 수가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의 학교는 마침내 슬럼가의 허름하고 가난한 학교로 방치되었다.
그 학교의 역사는 레바논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레바논은 대 이스라엘 전쟁의 후유증을 여전히 겪는 나라다. 패전 이후 아랍 사회주의당, 바트당, 미래당, 헤즈볼라가 번갈아 정권을 잡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회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학교는 변화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처음에는 작은 대출을 받았을 뿐이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은행이 합병되고, 새 은행이 담보를 요구함에 따라 학교를 몽땅 저당 잡혔다. 경제 정책이 바뀌면서 빚이 크게 불어났다. 얼마 전부터는 종교 경찰의 압력으로 교육 과목도 바꾸어야 했다. 예전처럼 종교적 관용을 가르치는 학교로 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감독의 아버지는 학교를 처음 세웠던 예전처럼 큰 뜻과 열망을 품은 사나이가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몸담았던 아랍독립운동의 실패를 힘겹게 고백하는 남자다.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을 떠올리며 미소 짓다가도 절박한 심정으로 복권을 긁는 남자다. 딸은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바보가 된 것 같아요. 예전에 품었던 꿈은 다 어디 있죠?”라며 힐난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슬프게 웃으며 “(나는 수니파니까)미래당을 좋아해야 해”라고 대답했다. 좋아한다는 대답이 아니었다. “좋아해야 한다”라는, 강요된 의무를 내포하는 대답이었다. 온 나라가 파벌이 갈려 불안정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속한 무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레바논이 좋아질 것이라는 꿈을 잃지 않는다. 원래 세상은 비정상이 되었다가도 다시 정상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항상 입버릇처럼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레바논 내전이 시작된 곳으로 학생들을 데려갔다. 은퇴 전 마지막 수업이었다. 학생들에게 불에 탄 버스를 보여주며 “무고한 승객들이 모두 내전에 의해 죽었다”고 가르쳤다. 그는 혼란에 빠진 조국을 어린 학생 세대가 되돌려 놓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것이 아버지가 딸에게 말하지 못한 꿈이다. 학교가 빚에 팔려 넘어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그는 훌륭한 교육자였다. 그의 삶은 슬프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가 존경스럽다. 그 교장처럼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레바논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 꿈이 꽃이 되어 피어나는 날, 평화롭고 질서 잡힌 정상 시대는 도래할 것이다.
우리의 꿈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헌법에 나오듯이 우리나라는 임시정부의 법통과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한 나라다. 우리는 굴종을 거부하고 외세와 독재에 맞서 싸웠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했고 그 중 일부는 현실로 이루어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꿈을 잃고 바보가 된 것처럼 보인다. 국가기구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지 오래다. 이제는 전염병 하나에 온 나라가 휘둘릴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양대 정당 중 하나를 “좋아해야 하는” 우리도 어쩌면 비정상 상태인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세상은 비정상이 되었다가도 다시 정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상 국가로 돌아갈 꿈을 아직 가지고 있는가? 우리 헌법 전문에 담겨있는,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자는 열망과, 자율과 조화를 향한 믿음과,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겠다는 목표는, 한때 우리의 꿈이었다.
손이상 문화운동가ㆍ밴드 요단강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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