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 확진 환자 수가 또 늘었다. 우울한 뉴스를 피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 보지만 한산해진 거리에서 생기를 찾아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감염자 격리시설이 들어선 종합병원 주차장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이 감돈다. 한낮의 땡볕을 피해 비좁은 가로수 그늘로 몰려 드는 사람들, 불안한 듯 무리를 피하는 눈빛들…
메르스 확산 탓 도심 거리 한산
병원 감염자 격리시설엔 적막만...
다양한 삶이 뒤엉켜 지나는 거리는 원래 변화무쌍하다. 북적북적 활기가 넘치다가도 순식간에 텅 비어버리곤 한다. 변덕스런 거리 풍경에 비해 옥상은 무던하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감춰진 덕에 항상 남루하고 너저분하지만 나름 고즈넉한 여유를 건네기도 한다. 옥상은 그래서 러닝셔츠 바람으로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머물다 내려가는 휴식 같은 공간이다. 막내가 타던 세발 자전거부터 쓰고 남은 스티로폼, 고무 대야, 깨진 유리판 등 당장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엔 아까운 물건들마다 세월의 흔적,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쟁여져 있다.
허름한 식당이 모여 있는 서울 봉래동의 막다른 골목 위에 시선이 머문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서민들의 깊은 한숨, 욕설까지 배출해 온 때묻은 배기관이 고깃집 지붕 위에 창자처럼 꼬여있다. 옆집 지붕 위에선 깨진 화분이며 세면대, 벽돌, 고장 난 회전의자가 비가 새지 않도록 덮은 천막의 누름돌 역할을 대신 하고 있다.
다닥다닥 이어진 옥상 사이로 어쩌다 드러난 공터는 깨알 같은 공간 활용 능력을 뽐낸다. 출구 찾기 보드게임 마냥 꽉꽉 채워진 주차장, 맨 안쪽에 세워둔 자동차를 꺼내려면 도대체 몇 대를 움직여야 하는 걸까. 바로 옆 골목 구석에선 폐업한지 꽤 오래 돼 보이는 노점 리어카 여러 대가 새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잠시 사무실을 벗어나 남산 순환도로를 걷다 보면 후암동과 용산동 일대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가 저녁마다 이리 저리 돌려가며 화면조정을 하시던 TV 안테나 대신 둥그런 위성 안테나와 이동통신 중계기가 옥상을 뒤덮은 지 오래다. 오지랖 넓은 참새 녀석은 이 옥상 저 옥상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먹거리를 찾아내고 운반하고 소문을 낸다. 주택가 옥상의 단골 손님은 역시 햇빛, 요즘 제법 찬란한 햇살이 속옷부터 이불빨래까지 차별 없이 내리쬔다. 어지럽게 이어진 전깃줄과 즐비한 에어컨 실외기 사이에 자리잡은 텃밭에선 고추 상추 깻잎 등 각종 채소가 오후 막바지 햇빛을 받고 있다.
다시 봉래동 막다른 골목, 짙은 어둠이 깔리면 고깃집 앞 간이 테이블 주위로 삼삼오오 샐러리맨들이 모여 앉는다. 저마다 불황 때문에 힘든 얘기며 메르스로 인한 불안감, 심각한 가뭄 소식, 정치판 돌아가는 모양새까지 세상의 온갖 걱정을 안주 삼아 밤 늦도록 서로를 다독인다. 도시의 일상은 또 다시 다가올 미지의 내일을 향해 이렇게 내닫는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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