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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농심, 물 필요한 곳 어디든 가야죠"

입력
2015.06.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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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공직 생활에 최악 가뭄

산간마을 마실 물조차 없어

겨울부터 휴일 잊은 채 급수 업무

하루 빨리 단비 내렸으면…

40여년 만에 유례없는 가뭄으로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함일선(소양정수장 근무ㆍ오른쪽)씨가 16일 오후 춘천시 동면 감정리 이임순 할머니 댁에서 급수지원 하고 있다. 춘천=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40여년 만에 유례없는 가뭄으로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함일선(소양정수장 근무ㆍ오른쪽)씨가 16일 오후 춘천시 동면 감정리 이임순 할머니 댁에서 급수지원 하고 있다. 춘천=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강원 춘천시 동면 소양정수장에서 산간마을에 용수공급을 담당하는 춘천시 공무원 함일선(57) 씨는 요즘 전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가뭄으로 물 부족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그를 찾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불볕더위가 시작된 이달부터 용수사정이 더욱 나빠져 하루에도 두 세 차례씩 5톤 급수차를 타고 산간마을을 다녀야 할 정도가 됐다. 마을의 빈 물통에 ‘생명수’를 채워주는 그는 가뭄으로 시름하는 마을 주민에게 가장 반가운 존재다. 춘천시 동면에서 홀로 농사를 짓는 이임순(85) 할머니는 “몸이 불편한 노인에게 때가 되면 어김 없이 찾아와 먹을 물을 주고 가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난 13일 오후에도 함씨는 서둘러 점심을 한 술 뜨고 평소와 다름없이 트럭에 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주산마을. 계곡물을 간이상수도와 물탱크에 저장해 사용하는 이 마을엔 오랜 가뭄으로 마실 물 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함씨는 “이곳은 암반이 워낙 깊은 데다, 지하수까지 말라버려 관정으로는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제대로 공급하기 어려워 비상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며 “조금만 나가면 의암댐이 있지만 그 물을 끌어들일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고추와 깻잎은 시들어 축 처져있고, 옥수수대도 한 뼘도 채 자라지 못한 채 말라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메마른 밭에선 뿌연 먼지가 펄럭거렸다. 몇몇 농가에선 스프링 쿨러를 돌려 보지만 땅을 적셨던 물기는 뙤약볕에 금세 증발돼버리고 만다.

“26년 공직생활에 이런 가뭄은 처음 겪는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몇 주만 더 가뭄이 이어지면 파종된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논밭을 갈아엎어야 할 판이라는 농민들의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눈에 보이는 것 보다 심각해요.”

그의 말처럼 춘천을 비롯한 강원지역은 전국에서 가뭄이 가장 심각하다. 영농철이 시작된 5월 이후 강수량은 22㎜로 예년의 23%에 불과하다. 강원도에선 요즘 곳곳에서 조선시대나 있을 법한 기우제가 열리고 있다.

최근 비가 조금 내리기는 했으나 가뭄을 해갈시키기에는 턱 없이 모자란다. 수도권에 용수를 공급하는 소양강댐 수위는 16일 현재 152.5m로, 역대 최저 수위 151.93m에 불과 50㎝만을 남겨둔 상태다. 심지어 댐 수위가 발전방류가 불가능한 150m 아래 ‘로우레벨(Low level)’까지 떨어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함씨가 탄 급수차는 춘천시내에서 외곽도로를 20여 분을 달린 뒤 울퉁불퉁 한 비포장길을 지나 경사가 20도는 될 만한 급한 비탈길에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다.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도 그는 묵묵히 호스를 어깨에 메고 비탈에서 30여m 위 가파른 산 정상의 물 탱크로 향했다. 온몸에 땀이 비오 듯 흐르고 숨이 턱 막히지만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물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농민들을 보면 어릴 적 농사를 짓던 부모님 생각이 나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힘겹게 5톤의 물을 빈 물탱크에 두 번에 걸쳐 콸콸 쏟아 부으면 마을 주민 13가구가 1주일 정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함씨는 가뭄이 심각해 진 올 겨울부터 휴일도 반납하고, 물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모임은 꿈도 꾸지 못할 지경이다. 대신 매일 같이 2인 1조로 동고동락하는 10살 아래 급수차 기사와는 어느새 ‘절친’이 됐다. 그는 “열심히 일하다 보니 좋은 동생을 만나게 됐다”며 “이젠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험한 산을 오르는 중노동을 해야 하기에 그의 몸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곳을 다니다 보니 트럭이 미끄러지는 등 가슴을 쓸어 내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물 때문에 마을 주민들간 다툼이 벌어지는 것을 볼 때면 가뭄이 순박한 민심을 찢어 놓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그는 “속이 시커멓게 탄 주민들에 비하면 이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가뭄현장을 자주 찾다 보니 요즘 자연스레 물 절약 전도사가 됐다”는 함씨는 “애타는 농민들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게 빨리 단비가 좀 내렸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나타냈다.

춘천=박은성기자 esp7@h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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