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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매실과 메르스

입력
2015.06.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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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신 다음날 아침이면 으레 콩나물국 한 그릇을 떠올렸다. 북엇국이나 선지해장국을 꼽는 사람이 많지만, 동물성 안주에 시달린 속에 동물성을 더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콩나물은 손쉽고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데다 해독작용도 뛰어나 지친 간을 어루만지기에 제격이다. 그런데 재료나 조리법이 간단한 음식일수록 제 맛을 내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야채 된장국은 여러 가지를 시도해 거의 성공했지만, 콩나물국 끓이기는 도전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대용으로 택한 게 매실청이다. 10년 넘게 홀아비로 살아 주부 뺨치는 음식솜씨를 갖게 된 후배가 담가 보내주었다. 설탕 대신 조리용으로 쓰라고 했지만, 주로 해장용으로 쓴다. 콩나물국 생각이 간절하던 어느 날 냉장고에 잠자던 매실청이 떠올랐다. 농익은 매실로 담근 ‘우메보시(梅干)’를 물에 풀어 해장용으로 마시던 일본 친구들의 모습, 같은 매실이니 비슷한 효과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짐작이 들어맞았고, 지금은 콩나물국을 떠올릴 것도 없이 바로 냉장고를 연다.

▦ 매실이 제철이다.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매대에는 청매실 상자나 자루가 수북하다. 봄밤의 저온 현상과 혹심한 가뭄으로 예상 수확량이 평년의 90%를 못 넘고, 조금이라도 더 굵게 익혀 따려는 산지의 ‘출하 조절’까지 겹쳤다. 그런데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확산 여파로 수요가 위축, 평년은 물론이고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난해보다도 시세가 약하다. ‘망종 매실’이란 말처럼 망종인 6일 반짝 가격이 치솟았다가 이내 곤두박질해 농가의 시름이 깊다.

▦ SNS로 들어온 ‘한의학적 단상’이란 글에 무릎을 쳤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겨울철의 감기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은 찬 기운의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이어서 김치찌개처럼 뜨겁고 매운 음식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 반면 메르스는 뜨겁고 건조한 사막에서 온 온병(溫病)이어서 그런 음식에 익숙한 한국인이 오히려 취약할 수 있다. 물을 자주 마시고 땀을 적게 흘려 체내 수분을 유지하라. 매실을 추천한다. 체내수분 보충과 살균 효과가 있어 조선시대에는 온역(溫疫ㆍ돌림병) 치료에도 쓰였다.’때마침 매실 값도 싸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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