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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겨울 30%씩 사라지는 꿀벌… 백악관도 보호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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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겨울 30%씩 사라지는 꿀벌… 백악관도 보호 나섰다

입력
2015.06.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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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업자에 돈 주고 꽃가루받이

벌의 죽음이 보내는 생태계의 경고

오바마, 꿀벌 살리기 국가전략 발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벌을 치는 오린 존슨씨는 최근 들어 연이은 도난 사건에 휘말려 골치 아파하고 있다. 도둑이 훔쳐간 존슨의 귀중품은 다름 아닌 ‘벌’. 그는 500봉군(蜂群ㆍ벌떼)을 가진 전문 양봉업자인데, 최근 3년 동안 누군가 그의 벌을 조금씩 훔쳐가는 일이 반복됐다.

존슨은 “어느날 밤 양봉업자가 과수원에 벌을 풀어 놓고 자리를 뜨자 조금 뒤 다른 사람이 와 그 벌을 다시 담아다가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수분(受粉ㆍ꽃가루받이)을 돕는 대표 매개 곤충인 벌이 부족해지면서 미국에서 벌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미국 CBS가 14일 보도했다. 농민들은 농작물 재배에 필수적인 수분이 자연 방식으로 불가능해지자 양봉업자로부터 벌을 빌리고 있는데, 1봉군을 한 달 빌리려면 평균 200달러를 내야 한다. 벌 도난 사건은 특히 전적으로 벌에 의해 수분을 의존하는 작물인 아몬드 과수원에 꽃이 필 때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코디 윌리엄스 캘리포니아주 스타니슬라오 카운티 보안관보는 “다른 가축 도둑과 달리 소는 훔쳐가면 찾을 수 있지만 도둑 맞은 벌은 벌집 상자가 모두 똑같이 생긴데다 벌에다 주인 이름을 새겨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주인을 찾아주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사라지는 벌의 날갯짓

‘벌의 실종’은 전 지구적으로 꽤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다. 말라 스피박 미네소타대 곤충학 교수는 최근 CNN 기고에서 2007년 이후 매년 겨울마다 미국의 꿀벌 떼가 평균 30%씩 폐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에선 2012, 2013년 겨울을 거치며 꿀벌 떼가 29% 줄었고, 유럽에서는 같은 기간 꿀벌의 20%가 사라졌다. 야생벌 중에서도 호박벌의 생존 위기가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들어 상황은 날로 악화 중이다. 미국 농무부(USDA) 후원으로 곤충학자들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간 양봉업자 6,1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벌떼가 전년 대비 42.1% 감소했다. 전년도 꿀벌 폐사율 34%보다 8%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2010년 이 조사가 시작된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오클라호마 일리노이 아이오와 델라웨어 메릴랜드 펜실베니아 메인 위스콘신 미국 8개 주에서 꿀벌 폐사율이 무려 60%를 넘었다. 특히 여름철(4~9월) 폐사율이 27.4%로 겨울철(10~3월) 폐사율 23.1%보다 높았다는데 곤충학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추운 겨울보다 여름철 폐사율이 높게 나타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스피박 교수는 “벌의 죽음은 우리에게 현재의 농업 방식과 도시 환경이 계속 지속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며 “지구의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경고음에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먹는 농작물 대부분이 재배 과정에서 벌의 수분 작용에 도움을 받고 있어 벌 떼 감소는 농가의 경제적 타격과 직결된다. 특히 벌에 수분 의존도가 높은 아몬드 베리 농가의 타격이 크다. 소들의 주 먹이가 되는 건초 재료인 알팔파 풀도 줄어들어 낙농 농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계 100대 농작물 중 71%가 벌의 도움으로 수분 작용을 한다. 벌의 수분 작용으로 거두는 농작물의 가치는 미국에서만 160억달러 규모로 측정된다.

전문가들은 미국 양봉업계가 경제적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벌 떼의 폐사가 현재 수준의 절반으로 줄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양봉업자들은 꿀벌 폐사율이 19%를 넘으면 재정 위협을 느끼며 현재 50대 이상 양봉업자 상당수는 손해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을 고려 중이다.

네오니코티노이드가 주범

벌은 자신에게 필요한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꽃가루와 꽃의 꿀에서 얻는다. 벌이 주식인 꽃을 찾아 여러 꽃을 옮겨 다니면서 꽃가루가 벌 몸에 묻고, 다른 꽃으로 옮기면서 수분이 이뤄진다.

50년 전만 해도 벌들은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건강했다. 먹이인 꽃도 많고 무엇보다 살충제로 오염된 꽃도 적었다. 외래 질병과 해충은 드물었고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땅과 나무에 서식지를 마련했다. 반면 2015년을 사는 벌들은 당장 먹이인 꽃가루와 꿀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분별하게 제초제를 쓰면서 꽃이 피는 식물이 대거 사라졌다. 동시에 살충제에 오염된 꽃이 늘면서 벌을 직접적으로 죽이거나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살충제 중에서도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 살충제를 주범으로 지목한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살충제 중 하나다. 주로 파종 전 씨앗에 살충제 처리를 하면 자라면서 살충제 성분이 모든 부위에 퍼진다. 특히 옥수수 콩 캐놀라의 농작물 재배에 많이 사용된다. 미국 옥수수 95% 이상은 네오니코티노이드가 처리된 씨앗을 재배에 사용한다.

살충제 유효 성분은 꽃가루와 꽃꿀에도 퍼져 벌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여러 살충제 중 네오니코티노이드가 유독 해로운 이유는 ‘중독성’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영국 뉴캐슬대 곤충신경생태학자 제랄딘 라이트 박사 연구팀은 4월 네이처에 벌이 네오니코티노이드의 니코틴계 신경 자극성 성분에 중독돼 이런 종류의 살충제가 함유된 먹이를 선호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선 연구에선 네오니코티노이드가 꿀벌의 길 찾기 능력을 교란시키고 여왕벌 수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곤충들의 병이 빠르게 확산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각종 기생균과 바이러스, 병원균의 유행도 벌의 실종에 주요 원인이라고 꼽는다. 균과 바이러스에 감염돼 면역력이 약화된 벌은 먹이 부족으로 인한 영양 결핍에 더 취약해진다.

꿀벌 살리기 나선 백악관

상황이 심각해지자 백악관도 꿀벌 살리기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꿀벌 등 꽃가루 매개자 보호를 위한 국가 전략’을 발표했다. 벌과 나비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전략은 2007, 2008년에도 수립됐지만 이번처럼 관계기관 14곳과 민간까지 협력하는 대형 프로젝트는 처음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보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백악관 주도로 꽃가루 매개자 보호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발족, 전략 수립을 진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과학기술 보좌관을 맡고 있는 존 홀드런은 “대통령은 단지 벌의 경제적 영향뿐 아니라 ‘탄광의 카나리아’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며 “꿀벌 떼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붕괴된다면 이런 현상이 우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전략은 10년 내 꿀벌 떼 폐사율을 15% 미만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다른 멸종위기종인 모나크나비의 개체 수를 2020년까지 2억2,500만마리로 늘리는 계획도 포함됐다. 모나크나비도 농업기술이 바뀌면서 이들이 알을 낳던 밀크위드(유액을 분비하는 식물)의 감소, 기후변화와 살충제 노출 등으로 생존에 위협을 맞고 있다. 민관은 또 앞으로 5년간 2만8,327㎢에 달하는 꽃가루 매개자 서식지를 복구하고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네오니코노이드 성분 살충제가 벌에게 미치는 영향 평가도 서두르기로 했다. 미국환경보호국(EPA)은 예정보다 2년 앞당겨 올해 말까지 첫 번째 평가를 마치고 결과를 발표한다. 살충제 규제조치도 1년 앞당겨 2018년 말까지 마무리 짓기로 했다. EPA는 또 꿀벌로 수분을 하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경우, 살충제 종류를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 살충제를 업계에서 퇴출하기 위한 민간 차원의 노력은 이미 진행 중이다.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 어스저스티스(Earthjustice) 등 환경단체는 그 동안 EPA에 네오니코노이드 성분 살충제를 불법화하라고 압박을 가했고, EPA는 3월 해당 성분이 포함된 살충제의 사용 허가를 추가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유럽연합(EU)은 벌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로 네오니코노이드 성분 살충제 사용을 2년 동안 금지한 상태다.

하우스농업 생명과학ㆍ원예학ㆍ연구 분과위원회 회장인 로드니 데이비스는 “EPA가 꿀벌 몸에 사는 진드기인 ‘바로아 응애’엔 소홀하고 살충제의 영향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행정부가 이제라도 꽃가루 매개자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해 반갑다”고 말했다.

민간에서도 벌과 나비의 서식지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 종자 회사인 ‘애틀리 버피’(W. Atlee Burpee & Co)는 국민들이 꽃가루 매개자를 위한 정원을 가꾸도록 해 달라며 씨앗 봉투 100만개를 백악관 국립공원관리청 농무부에 기부했다.

스피박 교수도 “우리 모두 행동에 나설 때”라며 “꽃과 농작물을 마당에 심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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