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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그 남자의 '조건'을 따져보기 전에…

입력
2015.06.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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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 주에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한 서른 살 여자입니다. 스물 여섯 살쯤 마지막 연애를 했고 그 후엔 늘 썸만 탔지 제대로 연애를 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남들처럼 내 짝궁이 생기겠지 라는 생각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도 즐겁게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이젠 서른 살이 되었으니 정말 결혼을 생각하고 만날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으니 어떻게든 결혼 적령기의 남자들을 만나게 되겠죠? 어떤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좋을까요?

A 그러게 말이에요. 대체 어떤 남자와 결혼하면 제일 좋은 걸까요? 경제력이 탄탄한 남자? 자상한 남자? 좋은 아빠가 될 가능성이 높은 남자? 오직 나밖에 모르고 바람 피울 가능성이 제로인 남자?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런 남자? 미지의 어떤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 설레는 일이고 또 이런 과정이 있어야 자신의 기준이 서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저는 당신이 이런 조건을 나열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자, 먼저 답을 알려드릴게요. 그건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가', '아내로서의 나는 어떤 점들이 결혼 이후에 이루어지고 지속되길 바라는가',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하는 일일 겁니다.

전공을 선택하는 것, 직장을 택하는 것, 이직하는 것, 결혼을 결정하는 것 등 인생의 많은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그 결정에서 자신을 배제한 채 객관적인 조건, 스펙, 숫자 같은 것을 굉장히 중요시한 결정을 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별로 관심이 없던 학문이지만 단지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어떤 전공을 선택하기도 하고, 연봉이 높다고 하니 자신의 성향과는 맞지도 않는 회사에 지원을 하는 식으로요. 무언가를 선택할 때 그 안에 자신의 행복이 얼마나 이루어질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나 숫자로 측정되는 효용에 더 많은 가치를 두다 보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이런 결정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분명히 문제는 생기고 맙니다. 남들은 자신의 상황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나는 집에 돌아오면 하나도 즐겁지가 않고 공허함만 커져 가는 것이죠. '내가 언제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인간인가'를 스스로에게 따져 묻지 않는다는 것은, 길지도 않은 삶을 불행한 쪽으로 몰고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언제 행복해지는 사람이지?' 당신이 지금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은 그러므로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함께 생각을 나누며 이런저런 토론을 할 때 행복해지는 사람이라면, 관심사나 대화하는 방법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겠죠. 몸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그럴 때 비로소 활력을 느끼는 편이라면, 운동에 대한 관심사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좀더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쇼핑을 하는 것이 즐겁다면 적어도 '수입의 몇%'를 쇼핑하는 데에 쓰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비슷한 답을 공유할 수 있는 남자라야 별 탈이 없을 것 같네요.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좋나요?'라는 질문은 그러므로 남에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이 아닐까 싶네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없이 상대방의 조건이나 데이트 도중의 짧은 리액션 정도로 '이 남자는 어떨까?', '이런 모습은 별론데?'라고 끊임없이 재단하다 보면 내가 결혼해야 할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어 버릴 겁니다. 어떤 사람이든 크고 작은 단점들이 있는데, 이런 식의 접근으로는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고 그저 끊임없이 단점만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특히나 결혼정보회사라는, 즉 결혼이라는 목표를 위해 돈을 내고 사람을 소개받기로 한 사람 둘이서 만난다는 일은 자연스럽게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일보단 요모조모 조건 위주로 뜯어보는 일쪽에 가까워질 확률이 크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조건을 따져묻지 않은 채로 맞선 상대를 소개받는다면, 당신의 결혼이라는 프로젝트는 점점 더 미궁에 빠져버릴 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많은 수의 남자를 만난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지도 몰라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결혼이란 두 개의 원이 완벽히 겹쳐지는 형태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런 결혼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한들 행복하지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학 시간에 집합을 배우면서 그리는 두 원의 벤다이어그램 기억하시죠? 두 개의 원이 겹쳐있어 서로간의 교집합이 존재하지만 각자만의 영역도 존재하는 그런 모습요. '어떤 때에 행복을 느끼는가'에 대해서는 교집합이 아주 많이 존재하지만,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도 하고 서로 존중해주는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 훨씬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혼자일 때보다 풍부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은, 바로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존중할 수 있는 사이에서만 가능할 겁니다.

연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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