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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입력
2015.06.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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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읽으면 라인홀트 니부어의 예지를 느낄 수 있어서 정신이 번쩍 든다. 딱딱한 내용과 글인데도 그의 상상력이 그 안에서 빛나고 있다. 게다가 개인과 사회, 도덕과 이성의 문제라는 거대한 담론을 넓은 안목과 역사적 이해로 쉽게 접근하게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그 혜안이 존경스럽다. 게다가 그가 목사며 신학자였기 때문에 영성적 해석까지 담겨 있어서 종교적 성찰까지 확장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종교적 윤리적 색채 때문에 불편해 하거나 고루하다고 느낄 여지가 있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그가 개인은 도덕적인데 왜 사회는 비도덕적인가 하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갈등의 핵심적 화두를 세운 것은 분명하다. 어떤 이는 도덕성이라는 게 본디 개인에 국한된 개념이지 사회나 국가를 판단하는 데에 공정한 척도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건 본인이 마키아벨리스트라는 고백일 뿐 정확한 비판은 아니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를 읽어내야 한다.

이 책은 1930년대 초반에 쓰였다. 그 시대는 미국의 대공황시기이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급속히 성장하여 1927년에 이르러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았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는데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계층간 소득불평등이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만 국한되어 국민의 5%에 해당하는 상류 부유층이 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시민의 구매력을 떨어지고 재고는 쌓였다.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자금은 증권 등 투기 시장으로 몰렸다. 거품이 일었지만 탐욕에 눈이 먼 자본의 투기 질주는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1929년 대폭락을 맞았다. 경제 공황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파산을 의미했다.

책은 자본주의의 극심한 위기상황에서 쓰였기 때문에 그 논조가 비판적이고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을 배제한 채 이 책을 평가하는 것은 상찬이든 비판이든 정당하지 못하다. 물론 니부어 역시 시대의 딸이기 때문에 그의 사상도 그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도덕성과 합리성을 회복하여 사회를 구원하자는 바람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구체적 대안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그 한계의 핵심이다.

그러나 대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비판 그 자체이다. 문제를 찾아내야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강구한다. 그런데 듣기 고깝다고, 상대가 비판한다고 억누르고 못살게 굴어 입을 다물면 문제가 더 악화되어 곪아터진다. 어제는 옳았지만 오늘은 그를 수 있다. 그게 삶이고 세상이다. 어느 한 가지 입장만 옳다고 고수하고 다른 생각은 외면하거나 억압하면 결국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

은나라를 세운 탕왕은 세숫대야에 ‘구일신일일신우일신(苟日新日日新又日新)’ 아홉 글자를 새겨 세수할 때마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다짐을 늘 일깨웠다. 탕왕은 백성의 입장에서 세금을 줄이도록 제도를 고치고 억울한 세금을 경감하게 하여 성군을 칭송받았다. 탕왕은 ‘나의 눈’으로만 바로 보지 않고 ‘백성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했기에 성군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늘 깨어 변화하려 스스로 노력했고 세상을 읽었다.

니부어의 분석과 비판이 21세기에 온전히 맞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사회가 문제다. 그런데도 불행히 그의 비판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상당 부분 적용된다. 자본주의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라고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탐욕으로 질주하지 않고 더 건강한 경제 가치로 진화할 수 있다. 21세기 이곳에서 니부어는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를 물어보고 싶다. ‘일신우일신’은 그런 물음이다. 시대에 끝없이 물어야 한다. 나도 탕왕처럼 세면대에 아홉 글자 적어둘까?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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