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 등 외국인 발길 끊겨
버티기 힘든 상인들 줄줄이 떠나
빈 점포 생긴 건 지금껏 처음 봐
"네식구 밥줄… 꼭 이겨내야죠"
지난 12일 금요일 오후 9시, 서울 동대문 신평화패션타운은 이때 깨어난다. 2층에 반 평 크기로 촘촘하게 들어선 작은 점포들마다 굳게 닫혔던 셔터 문들이 일제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여느 상가 같으면 일과를 마치고 매장 정리에 들어갈 시간이지만 동대문 재래시장인 이 곳에선 가장 분주한 시간이다. 영세한 상점들로 구성된 이 곳은 20여년 전부터 인근에 들어온 대형 쇼핑센터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개장 시간이 아침에서 전날 저녁으로 당겨졌다.
30년간 여기서 여성복 도ㆍ소매점을 운영한 배재일(63) 사장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이달 들어 옷을 단 한 벌도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인연합회장인 배 사장과 인터뷰를 하는 일은 힘들었다. 1,100여개 점포로 구성된 시장의 애로사항을 살펴야 하는 자리를 이용하려 든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장사도 되지 않는데 무슨 인터뷰?”
“장사고 뭐고 되는 게 없어서 할 말이 별로 없다”며 입을 뗀 배 사장은 “이 곳에 들어온 지 30년 만에 동대문 상가에서 점포가 빠져 나가 빈 공실이 생긴 것을 처음 봤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소비 심리 탓에 가뜩이나 물건이 팔리지 않는 데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까지 덮쳐 죽을 맛이었다. 그는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며 “이달 들어 물건을 한 개도 팔지 못한 상인들이 견디다 못해 줄줄이 나가 떨어지며 이 곳을 떠나고 있다”고 아픔을 토로했다.
중국인을 포함해 동남아시아 등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게 결정적이었다. 이 곳 상인들의 전체 매출은 예년의 5분의 1로 급감했다. 결국 자금 회전에 어려움을 겪은 상인들은 점포를 비우며 떠나갔다. 동대문 상권 전체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견디다 못한 상인들이 12일 늦은 밤 비상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여 앉았다. 그들이 꺼내든 카드는 물건을 팔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주 5일 영업이다. 배 사장은“토요일과 일요일에 쉬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며 “상인들이 주말에 쉰 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지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가장’ 이니 희망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서울 동대문 상가는 우리나라의 패션 1번지로 꼽히던 곳이다. 내수침체와 메르스로 어려움을 겪기 전에 이 곳은 중국 관광객들이 반드시 거치는 여행 코스로 통했다. 배 사장은 “외국 손님들이 오면 한 번에 보따리로 싹 쓸어 가니까 할 만 했다”며 옛 일을 떠올렸다.
그 맛에 배 사장을 포함한 많은 상인들이 이 곳 반 평 남짓한 공간에서 평일 내내 쪽잠을 자며 수십 년씩 버텼다. 이 곳이 잘 나갔던 20여년 전만 해도 워낙 인기가 좋아 반 평에 불과한 점포 권리금만 수 억원대였다. 그는 이 점포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나머지 세 식구를 먹여 살렸다. 그만큼 그에게 점포는 곧 자부심이었다. 그는 “한 때 집이 두 채였던 게 자랑스러웠던 적이 있었다”며 “가족이 사는 집과 여기 점포였다”고 말했다.
비록 상황이 예전만 못하지만 동대문상가에 대한 배 사장의 애착은 달라지지 않았다. 30년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곳은 한 번도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믿음도, 학문으로 쌓아올린 경제학 이론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결국 살아가는 한 이 곳을 다시 찾지 않겠냐”는 삶에서 체득한 믿음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은 모두 출가시켰지만 아직도 가장”이라며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이번 어려움은 극복하고 물러나고 싶다”며 웃었다. 그만큼 그는 메르스도,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내수 침체도 지나간 과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허재경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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