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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일정 무시한 공채ㆍ인턴… 캠퍼스는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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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일정 무시한 공채ㆍ인턴… 캠퍼스는 멍든다

입력
2015.06.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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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중 인재 선발 탓 수업 포기해야… "기업에 밉보일라" 학생ㆍ학교 속앓이

"성실한 인재상 내세우며 불성실 양산" 경쟁회사들 의식한 입도선매 의혹도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국내 한 유명 사립대에 다니는 유모(23)씨는 지난해 2학기 때 수강한 수업의 조별 과제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조원 4명 중 2명이 회계법인에 합격했는데, 회사 측은 학기 중인데도 10월에 연수에 들어가야 한다며 출근을 요구했다. 유씨는 할 수 없이 20매에 달하는 심화 보고서를 나머지 조원 1명과 며칠 밤을 새가며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유씨는 “취업으로 빠진 동료를 탓하기도 뭣하고 조 구성을 다시 할 수도 없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았다”고 토로했다.

학사 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기업의 막무가내 인재 선발 방식에 대학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장기 면접과 연수, 인턴 생활 등이 학기 종료 전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대학도 학생도 학사 관리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국내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이모(27)씨는 면접으로 인한 결석이 걱정돼 처음부터 출결에 관대한 수업만 골라 수강신청을 했다. 이씨는 “평일에도 1박2일 취업 면접을 볼 수 있어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며 “등록금이 아깝지만 취업 준비에 올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실제 수강신청 시즌이 되면 각 학교 커뮤니티마다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 출결 부담이 적은 수업을 사고 파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갈수록 취업난이 가중되는 현실에서 대학과 학생들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은 입사 전부터 회사에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까 두렵고, 학교는 학교대로 해당 기업에 밉보일까 싶어 대놓고 푸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2년 전 한 대기업에 입사한 오모(27)씨는 학기 중인데도 “인턴으로 일하며 업무에 적응하라”는 회사 측 공지를 받았다. 그는 “인턴생활이 의무 사항이 아니었음에도 거의 모든 합격자가 참여했다”며 “수강 과목 교수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전했다.

교수와 강사들도 매 학기 반복되는 취업 준비생들의 부탁에 난감하기만 하다. 서울 A대에서 졸업 필수과목을 강의한 강사 김모(33)씨는 승무원 시험에 합격한 학생이 낙제를 면하기 위해 어머니까지 모셔와 호소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김씨는 “졸업은 해야 하니 취업한 학생들 일정에 맞춰 1대1로 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기업들은 ‘성실한 인재상’을 내세우면서 정작 수업에는 불참하는 ‘불성실’한 학생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경쟁 업체를 의식해 우수 신입사원을 입도선매할 목적으로 무리한 일정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타사 면접의 기회를 박탈하고 복수 기업에 합격하는 학생들의 이탈을 막으려는 꼼수가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기말고사 전 연수 및 채용 전제형 인턴을 시행하고 있는 기업 중에는 업계 1등이 아닌 곳이 많다.

기업들은 내부 교육 시스템과 인력 운용의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유명 IT회사 인사 담당자는 “면접 인원이 많아 주말에 다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평일에 실시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달 초부터 신입사원 연수를 진행 중인 B은행 관계자도 “교육 프로그램에 맞춰 연수일정을 짜느라 개별 사정을 반영하기 어렵다”며 “응시생이 원하면 면접일정을 조정하고 기말고사도 치를 수 있게 노력한다”고 했다. 전상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채용시장에서 기업의 입김이 워낙 막강해 대학도 취업 준비생의 호소를 외면하기 힘들다”며 “미국처럼 상시 채용제도를 활성화해 기업간 경쟁을 줄이고 학사 관리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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