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가 무엇인지는 다 아실 것이다. 굳이 사전을 펼쳐보면 ‘바닷가나 섬 같은 곳에 탑 모양으로 높이 세워 밤에 다니는 배에 목표, 뱃길, 위험한 곳 따위를 알려 주려고 불을 켜 비추는 시설을 말한다’고 나와 있다. 광탑(光塔)이라고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거문도 등대는 1905년 4월 12일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110년이 된 것이다. 유리를 가공한 프랑스제 프리즘렌즈를 지금도 쓰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것 만드는 기술이 아직 없다나 어쩐다나. 등대는 반짝거리는 시간이 각각 다르다. 야간항해를 하는 항해사는 등대 불빛과 불빛 사이에 걸리는 시간을 헤아려 어느 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문도 등대는 15초 간격이고 약 40㎞ 거리에서도 볼 수 있다.
또 하나. 모든 방파제 끝에는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소형 등대가 있다. 그런데 불빛이 두 가지이다. 어떤 방파제 끝은 붉은 색, 어떤 방파제는 녹색이다. 차이가 뭘까. 답은 붉은 색 등대불빛은 왼쪽으로 항해하라는 표시이다. 오른쪽이 방파제라는 것. 녹색은 그 반대. 바다에서 들어오는 배의 시각으로 봐서 그렇다. 항구에서 나가는 배는 주변 지형지물을 모두 알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밤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등대불빛 덕분이다. 요즘은 배마다 레이더와 위성항법장치가 있어 등대의 역할이 줄어들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으로서의 위상이나 상징성은 그대로이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 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동요를 지금도 부르고 있으며(등대지기 노래는 아일랜드 민요가 미국으로 건너가 찬송가가 되었다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왔다는 게 추측이다. 가사도 당나라 시인의 시가 변형된 것으로 본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을 내니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 주는 사람이나 사실’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다른 게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등부표이다. 주로 가까운 바다에 혼자 떠있는 것으로 암초 같은 바다 속 장애물이 있거나 육지에 접근하는 항로를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다. 바다 밑바닥에 고정시킨 침추(沈錘)에 체인으로 연결시켜 놓았기에 어디로 떠내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둥실 떠있다. 보통 노란색이며 원통 위에 삼각형 구조로 되어있고 맨 위에 집광판과 축전지가 있다. 그러니까 불을 밝히는 항로지표 중에 가장 작은 것에 속하며 어디서나 자주 볼 수 있다.
거문도에도 등부표가 여러 개 있다. 멀리 밤낚시 갔다가 돌아오면 그게 반갑기도 하고 안개라도 끼었을 때 만나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어 든든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등부표가 오해를 산 일이 이번 우리 섬에서 일어났다.
거문리 마을 뒷산 봉우리에는 팔각정이 있다. 관광객들이 그곳에 올라갔다가 저만큼 떨어져있는 등부표를 본 것이다. 관광객들의 특징 중 하나는 오버를 하는 것이다. 단체관광이라는 게 시끄럽고 수다스럽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마치 얌전한 청년들도 예비군복 입혀 놓으면 거칠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호들갑 떨면서 전화로 신고를 했다. 잠수함이 나타났다고. 얼핏 보면 삼각형 구조가 잠수함의 맨 윗부분을 연상시키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흔한 등부표를 잠수함으로 오인할 수 있을까. 아무튼 경찰과 군부대에 한바탕 비상이 걸렸다. 잠수함이 나타났다면 분명 북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 똑똑하다고 주장하는 개인도 이렇게 단체로 묶어두면 바보 되기 십상이기는 하지만 ‘보안’이라는 단어가 툭하면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덮어버리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하다. 하긴 우리는 오랫동안 보안의 안경을 끼고 이웃에 온 사람도 간첩으로 의심하면서 살아왔으니까 등부표를 잠수함으로 보는 것쯤이야.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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