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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마그나카르타 800주년

입력
2015.06.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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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면 러니미드(Runnymede)라는 풀로 덮인 들판을 지나게 된다. 800년 전 6월 이 들판은 영국기가 펄럭이는 서커스 지붕 모양을 한 존 국왕의 대형 천막과 점점이 귀족, 기사들의 텐트가 자리한 다채로운 풍경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축제 행렬 같았지만 그 곳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저항하는 귀족들과 당시 사람들에게 “사악한 기질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은 통치자 존 왕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같이 했기 때문이다.

당시 존 왕은 프랑스에 잃은 땅을 되찾기 위해 돈을 모으려고 선대에 귀족들이 받아들여온 것보다 많은 세금과 추가 부담금을 그들에게서 거둬들였다. 또 부유한 지방 영주나 상인들의 부동산과 노예를 강제로 빼앗은 뒤 이를 돌려주는 대가로 많은 돈을 내도록 했다.

만약 그가 이 같은 방식으로 모은 자금을 갖고 전쟁에서 승리했더라면 독단적인 세금징수가 문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에 패했고, 귀족들은 왕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런던에서 그를 생포했다. 궁지에 몰린 왕은 캔터베리 대주교의 중재로 평화협정을 맺었고 귀족들의 요구에 따라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라는 영국 대헌장을 제정했다.

이후 마그나카르타는 여러 차례 삭제, 수정 작업을 거쳤다. 왕과 동맹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귀족들의 권리를 명문화한 마그나카르타를 무효처리했다. 존 왕이 죽고 난 이듬해 귀족들의 추대로 즉위한 헨리 3세는 자신의 지지세력을 만들기 위해 이를 수정해 부활시켰다. 이는 지금 영국법에도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헨리 3세 버전의 마그나카르타는 사본으로 만들어져 영국 내 수많은 대성당에 배포됐다. 또 원래 라틴판은 귀족들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번역됐고 나중에 영어로도 옮겨졌다. 13세기 말에는 소작농들이 불평등에 맞선 투쟁에서 이를 인용하기도 했다.

마그나카르타의 첫 인쇄판은 1508년에 나왔다. 1640년대에 국회의원들은 찰스 1세를 타도하기 위한 법적인 근거로 마그나카르타를 이용했다. 또 미국 독립운동가들과 넬슨 만델라 등을 포함한 저항세력들은 마그나카르타에 호소하며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정의와 자유를 지키려는 투사들이 이 3,500자 문서에서 얻어낸 것은 피지배자들의 재산과 사람을 마음대로 빼앗은 존 왕에 대항해 선포한 짧은 일반 원칙들이었다. “자유민은 그와 동등한 자의 적법한 판정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 구금되거나 재산 또는 법적 보호를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39장이 대표적이다. “우리 중 누구도 다른 이의 권리를 팔거나 부정하거나 지연시킬 수 없다”는 40장도 마찬가지다. 이 두 강령은 미 수정헌법 제14조에도 반영되었다. “누구도 ‘법적 절차 없이는’ 타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강제로 빼앗거나 ‘법 앞의 평등’을 부정할 수 없다”라는 원칙이다.

그러나 마그나카르타는 민주적인 문서가 아니다. 당시 마그나카르타는‘세금을 징수할 때 백작과 남작, 주교, 수도원장 등으로 구성된 귀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그 과정을 명문화했지만, 기사들의 시대에 기사들은 거기에 초대 받지 못했다. 또 대헌장이 제정된 런던 같은 도시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최종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마그나카르타가 보여주는 것은 ‘통치는 누가 하는 것인가’ ‘만약 정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다면 어느 선까지인가’라는 문제제기이다.

마그나카르타는 인민의 주권에는 제약을 두지 않으면서 정치 권력을 제한하려는 시도였고, 이는 철학자들이 800년 이상 씨름해온 문제였다. 통치자를 제약할 원칙이 통치자와 피통치자 모두에게 없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중세학자들에게 익숙했던 대답은 자연법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에게 자연법은 자연 이성(신의 계시를 통해 드러나는 그런 법들과 반대로)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법의 진정한 이념이란 임의 체포와 몰수, 법의 합당한 적용을 벗어난 판결을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그나카르타의 핵심 원칙들은 이성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A가 B의 사유지에 침입해 B의 소를 빼앗았다면 법에 따라 A는 B의 소를 돌려줄 의무가 있다. 마찬가지로 C의 소가 B의 사유지를 침입했다면 B는 C의 소를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 C는 소를 돌려받기 위해 판사에게 뇌물을 건네지 않아도 된다. 마그나카르타로 부당한 법의 제정이나 시행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법을 왕의 의지보다 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생각은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관타나모만에 미국 수용소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심지어 마그나카르타에 따라 정치제도를 만든 나라들 중에서도 국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누구도 체포할 수 없고 정의(justice)는 후순위가 아니라는 요구가 후퇴해버렸다. 바로 안보 위협이라는 명분 때문이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ㆍ윤리학

번역=김진주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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