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이가 우물로 기어가서 막 빠지려고 할 때, 놀란 마음으로 앞뒤 가릴 것 없이 그 아이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인데,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례로 ‘맹자’의 ‘공손추장구상’에 실린 글이다. 그런데 성선설을 주장하는 ‘맹자’에 ‘고자(告子)’라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이 ‘기류(杞柳)’로 만든 그릇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인의예지는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이 백지와 같아 선악이 없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류는 고리버들 줄기, 혹은 구기자 줄기와 버드나무 줄기로 볼 수 있다. 구기자의 줄기도 버드나무처럼 축축 처지면서 자란다. 맹자와 고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2300~2400년 전 전국시대 때 인물이다. 구기자는 이미 그 시대에 흔히 자라거나 키우던 식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BC 221년,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불로장생을 위해 구기자를 매일 음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랜 세월 동양인의 건강을 지켜온 구기자인지라 전해지는 설화도 많다. 조선시대 3대 의서로 꼽히는 ‘향약집성방’에 실린 구기자에 관한 일화 하나. 선비가 길을 가다 젊은 여자가 노인을 야단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알고 보니 노인은 여자의 증손자였고 여자는 구기자를 먹고 300살 넘게 장수하고 있던 것이었다.
근년에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실려 있던 ‘구기백세주’의 이야기가 모 주류회사의 광고에 등장했다. 한 젊은이가 노인을 회초리로 때리는데, 지나가던 선비가 그 광경을 보고 놀라 젊은이에게 따져묻는다. “이보소, 젊은이! 대체 노인 분한테 무슨 짓인가?”그러자 젊은이는 “아 글쎄 이 아이는 내가 여든 살에 본 자식인데 그 술을 먹지 않아서 나보다 먼저 늙었소”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선비는 젊은이에게 넙죽 절을 하며 다시 묻는다. “그 술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줄 수 있겠소?” 젊은이는 “구기자와 여러 약초가 들어간 구기 백세주”라고 답한다.
구기자는 가지과(Solanaceae)에 속한 만생관목이다. 가지처럼 보라색 꽃이 피고 초미니 가지 같은 작은 열매를 맺는다. 허약해진 몸을 보하는 대표적인 한약으로, 무독하여 매일 차로도 상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질이 조금 차므로 뱃속이 냉하거나 설사가 잦은 사람은 따뜻한 성질의 약들과 함께 섞어서 복용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구기자 5g에다가 성질이 따뜻한 대추 2g, 생강2g, 진피2g 정도를 보태면 속이 찬 사람도 구기자를 즐길 수 있다. 중국여행 중 고급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주둥이가 긴 주전자로 곡예 하듯 차를 따라주는 이색경험을 할 수 있는데, 이때 주전자에서 나오는 차가 팔보차(八寶茶)다. 팔보는 여덟 가지 진귀한 약재라는 뜻으로, 구기자가 주약재이며 나머지 일곱 가지 약재는 누구나 구기자를 즐길 수 있도록 구기자의 약성을 돕거나 보완한다.
온난화 탓인지 봄은 짧고 여름은 빨리 다가오고 있다. 구기자를 응용한 약선 요리는 무더위에 땀을 많이 흘렸을 때 기운을 보충하는 것은 물론 더위도 이겨낼 수 있게 한다. 구기자를 넣은 약선 삼계탕을 소개한다. 토종닭이나 오골계에 황기 오가피 대추 구기자를 넣고 끓이면 여름을 이기는 보약이 된다. 삼베주머니에 황기 20g, 오가피 10g, 대추 10g, 구기자 10g을 담고 3리터의 물로 40분 정도 약재를 먼저 끓인다. 그 다음에 닭을 넣어 한 시간 정도 더 끓이면 된다.
허담 옴니허브 대표ㆍ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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