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업무상 배임죄 적용 검토
공사비 지급 순간 혐의 성립
'제 발등 찍기' 피하려 미뤄
광주시가 특혜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광주월드컵경기장 외벽 노출콘크리트 표면 보수공사를 중단했다. 보수공법 선정의 적정성 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뒤늦게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시가 건설사업관리단(감리단)에 공사 중단을 지시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설계변경 및 공사비 정산 절차를 밟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4일 시에 따르면 월드컵경기장 외벽 노출콘크리트 표면 보수공사를 발주한 경기시설과는 지난달 20일 해당 공사를 중단하라고 감리단에 지시했다. 경기시설과는 당시 감리단에 내려 보낸 공문을 통해 “토론회와 TF팀 회의 등 전문가 검토 결과를 반영해 현재 시공 상태로 공사를 중단한다.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가 끝난 후 적정한 보수방법을 선정해 공사를 추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는 시가 지난해 12월 공사 입찰 과정에서 노출콘크리트 전문 보수공법에 비해 공사비가 3배나 비싸고 건축현장에 적용된 적도 없는 도장(塗裝)방식의 특정 특허공법을 사용하도록 제한을 걸어 공사를 밀어붙인 데 대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하지만 시가 공사 중단을 지시하고도 정작 공사를 진행했던 업체에 대한 공사비 정산과 공사 중단에 따른 설계변경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언급도 하지 않았고 있다. 통상 발주자가 공사를 도중에 중단(공사계약 해제)시킬 경우 그 때까지 소요된 공사대금을 정산해야 한다.
그런데 왜 시는 한 달 가까이 공사대금 정산을 미루고 있을까. 이 의문을 풀어줄 열쇠는 이 공사를 둘러싼 특혜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경찰이 내놓았다. 경찰은 현재 시 관계자들에게 예산 낭비 등에 따른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무상 배임죄가 실질적 피해는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피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행위 자체를 범죄로 간주해 처벌하는 ‘위험범’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사중단 정산 대금 지급이 예산 낭비(피해)를 뜻하는 상황에서 시가 정산 대금을 지급하게 되면 대금 지급 순간이 곧바로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되는 ‘기수(旣遂)’의 시점으로 특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손해를 입을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도 배임죄가 성립된다는 점을 알고 있을 시가 굳이 정산 대금까지 지급해 스스로 혐의를 명확하게 해주는 ‘제 발등 찍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를 받고 있는 광주시 입장에서 보면 공사중단에 따른 정산 대금 지급이 결코 유리할 게 없다”며 “모르긴 몰라도 시가 섣불리 공사비 정산 대금을 지급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는 “다음 달 초쯤 해당 공사에 대한 설계변경을 할 때 공사중단에 따른 공사비 정산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감리단과 시공업체 측은 “광주시로부터 공사를 중단하라는 지시 공문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시의 계획대로 공사중단 정산 대금이 지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안경호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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