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기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12일 오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만난 차란희(37ㆍ여) 교수는 한 눈에 봐도 초췌한 모습이었다. 신장내과 전문의인 차 교수는 메르스와의 전쟁 최일선에서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다. 메르스 중증 환자들의 신장에 생기는 증세를 점검하고 치료 중이던 신장 투석 환자들도 돌봐야 한다. 메르스 전담병원의 의료진에게 배포할 지침을 만드는 일도 그의 몫이다.
의료원은 지난달 20일 국내 최초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1번 환자를 비롯해 지금까지 12명의 환자를 치료해 왔다. 1명은 완치돼 퇴원했고 2명은 사망해 현재 9명이 입원해 있다.
차 교수는 메르스 퇴치에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바이러스가 주로 환자들의 신장과 폐를 공격하기 때문에 상태 악화를 막으려면 신장 전문의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는 “입원 환자 9명 중 5,6명 정도가 신장 기능이 약화돼 단백뇨와 혈뇨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명감을 갖고 치료에 열중해도 격리 병동에 드나드는 일은 의사로서도 큰 부담이다. 3차 감염 우려 탓에 절차도 까다롭다. 속장갑과 덧신은 기본. 보호복과 전동식호흡장치(PAPR) 등 보호장구까지 껴입고 공기 유ㆍ출입이 차단된 음압병실로 들어간다. 간호 인력 역시 중증 환자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어 4시간 동안 보호장구를 계속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보호장구를 입고 진료를 하는데 한 여름에 우주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느낌이 딱 이럴 것 같아요. 땀이 너무 많이 나 탈진이 걱정될 정도입니다.”
더 큰 걱정은 자신도 바이러스에 노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특히 기도에 관을 삽입하면서 환자가 기침이라도 하면 긴장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차 교수는 “확진 환자를 치료하고 나면 동선을 최소화하는 등 스스로 제한을 두고 있다”며 “다른 의료진도 행여 가족에게 병을 옮길지 몰라 병원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거나 귀가를 해도 독방에서 생활하는 등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자신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극복해야 할 정신적 고충이다. 최근 차 교수가 사는 성북구의 아파트에서는 “입주민 중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확인 결과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으니 안심하라”는 방송을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는 “메르스 전담병원에서 근무하는 내가 입주민이라는 사실을 주민들이 알게 돼 ‘나가라고 하면 어쩌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주변에 의료원 재직 사실이 공개된 의료진은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등교 거부를 당할까 봐 가슴앓이를 한다고 한다.
의사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관건은 거점 의료기관이 혼선을 빚지 않도록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진료를 위한 설비 및 물품을 완벽히 구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얼마 전 ‘메르스 실무대응 지침(안)’도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또 정보가 누적되는 대로 지침을 업데이트해 다른 병원들과 공유할 예정이다. 차 교수는 “오전 6시30분 출근해 오후 10시 퇴근하는 강행군을 계속한 덕분에 비교적 빨리 지침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감염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저희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그는 메르스와 전쟁이 한창인 병동으로 다시 향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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