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좋은 반찬’이다. 2012년 첫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당시 유행했던 X세대 문화를 실감나게 보여줘 인기를 누렸다. 그렇다고 추억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응답하라1997’이 ‘응답하라 1994’(2013)에 이어 시리즈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정 시대의 보편적인 추억을 공감의 재료로 삼아 실제 커플 찾기란 이야기로 호기심을 자극해 폭발력을 키웠다. 올해 초 방송된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처럼 일회성 특집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11일 첫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어게인’은 아쉬움을 남겼다. 1999년 방송돼 인기를 누린 드라마 ‘왕초’의 주인공을 소환해 추억만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얘기 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어게인’은 명작 속 주인공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벌이는 동창회 콘셉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과거와 현재 얘기를 적절하게 버무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코너 시간 분배와 구성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게인’은 배우들이 한 자리에 만나는 상황을 약 30여 분이나 뜸을 들여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설렘도 반복되면 지루한 법이다. 차인표 송윤아 등이 ‘왕초’의상을 입고 드라마를 재연하는 에피소드도 필요 이상이었다.
‘왕초’속 연기를 재연하는 건 배우들끼리 추억을 나누는 장치가 될 수 있어도, 시청자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다. ‘왕초’를 촬영할 때 벌어진 얘기나, 배우들의 당시 연예 활동 에피소드 등도 제대로 담기지 않아 웃음 포인트를 찾기도 어려웠다.
첫 방송 반응을 살펴보니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참신한데 제대로 풀지 못해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트위터 등 온라인에는 ‘’어게인’의 ‘왕초’, 익숙한 것에 의한 안심’(mjblair0***), ‘문제는 공감대 형성. 의도는 참신해서 좋은데 프로그램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전혀 흥미를 유발하지 못해 안타깝다’(9szel***) ‘프로그램 취지는 좋은데 재미가 없다’(jiyu***) 등 부정적인 글이 올라왔다.
방송이 산만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MC없이 출연자들이 마구잡이로 얘기를 하다 보니 방송 흐름의 일관성이 깨진 탓이다. 한 네티즌(poks***)은 ‘조연급 이상 출연자가 진행을 하고 몇 명을 고정 패널만을 두는 형태로 가면 좋을듯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구성에는 여러 허점을 남겼지만 ‘어게인’은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차인표와 송윤아가 16년 만에 만나 “똑같다””너무 늙었다”라는 말을 주고 받는 모습은 동창회 예능프로그램만이 줄 수 있는 인간적인 매력 중 하나였다. 극중 연지(송윤아)가 커피에 타서 먹으라고 각설탕을 건네자 김춘삼(차인표)이 입에 넣고 씹어 먹는 장면 등 드라마 속 모습을 대화의 밑반찬으로 삼아 웃음을 주고 받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어게인’의 이날 첫 방송 시청률은 3.7%(닐슨코리아). ‘국민 MC’ 유재석이 출연하는 KBS2 ‘해피투게더’(3.8%)와 비슷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열어 뒀다. ‘어게인’이 어떻게 추억의 힘을 재정비하느냐가 정규 프로그램으로 살아 남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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