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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네 생각이 해일처럼…" 팔순 아버지의 회한 절절

입력
2015.06.1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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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 이어령 지음 / 열림원 발행·404쪽·1만5,000원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 이어령 지음 / 열림원 발행·404쪽·1만5,000원

“처음에는 나에게만 닥쳐온 비극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겪는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딸의 3주기를 맞으면서 여유가 생긴 것일까. 나와 똑같은 슬픔과 고통을 쫓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당신도 그랬느냐고.”

한국 최고의 지성, 이어령(81) 전 문화부 장관이 딸 이민아(1959∼2012) 목사의 3주기를 맞아 가슴속에 묻어뒀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독백으로 써내려 간 딸 잃은 슬픔은 시간이 흐르며 죽은 딸에게 건네는 편지가 되고, “나와 똑같은 사람들”을 향한 산문이 되고 시가 됐다.

고 이민아 목사는 이 전 장관보다 앞서 ‘똑같은 슬픔’을 겪었다. 맏아들이 스물다섯 꽃 같은 나이에 돌연사한 후, 그녀는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아프리카, 남미, 중국 등지를 돌며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 구제 활동을 하다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봉사경험을 모아 쓴 책에서 지성인의 딸로 살아야 했던 자신의 청소년기가 불행했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는 고인의 생전 인터뷰는 고스란히 저자의 아픔으로 남았다.

이 전 장관에게 딱 한 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밤이 있다. 딸은 아버지에게 굿나잇 키스를 받고 싶었지만 글쓰기에 빠진 아버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방 밖에서 “아빠, 굿나잇” 하고 인사했다. 글의 호흡이 끊길까 봐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흔들었다.

“만일 지금 나에게 그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면, 그래 민아야, 딱 한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매번 “굿나잇 민아”로 끝맺는 속죄의 편지에는 아내를 입덧으로 고생하게 만든 배 속의 딸을 잠시 원망하고, 둘이 떠난 바다여행에서 딸을 내팽개친 채 친구들을 불러 밤새 문학이야기를 나누고, 이발소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딸 결혼식에 늦은 나쁜 아빠, 이어령의 모습이 이어진다.

“내가 또 사고를 쳤어. 교회 앞 건널목에서 초록색 신호등이 막 꺼지려고 하는 거야. 네가 환자라는 생각을 못하고서 본능적으로 급히 뛰어서 나 혼자 급히 건너가버린 거야. 너는 기운이 없어서 미처 나를 뒤따라오지 못했지. (…) 너는 그 길을 건너 나에게로 오지 못했고, 나 역시 다시 되돌아가지 못했어. 그때 나는 그 거리가 천 리 만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었지.”

딸에게 쓴 시(2부), 이 전 장관 부부와 딸이 서로에게 보낸 편지와 딸을 인터뷰한 기사(3부)까지 묶은 고백록의 맨 앞머리, 저자는 이 속죄가 죽은 딸에게 “오르페우스의 수금처럼 당도하길” 바라며 힘겹게 썼다.

“네 생각이 난다. 해일처럼 밀려온다. 그 높은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나는 운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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