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김주희] "이런 순간순간들이 감사해요."
두산 진야곱(25)이 멋쩍은 듯 웃음지었다. 그의 호투에 팀도 함께 웃었다.
진야곱은 올 시즌 팀의 '대체 5선발'을 맡았다. 당초 이현승이 5선발로 나설 예정이었으나 시범경기 막바지 손가락 골절을 당하면서 이탈했고, 그 자리를 경찰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올 시즌을 앞두고 팀에 복귀한 진야곱이 채우게 됐다.
진야곱은 2008년 1차지명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왼손 투수에 빠른 볼을 뿌리는 그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그는 프로에서 좀처럼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했다. 늘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잠재력을 펼치지 못한 진야곱에겐 기회였다. 그리고 올 시즌 9번째 선발 등판 만에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는 지난 11일 LG 전에서 7이닝 2피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를 펼쳤다. 데뷔후 최다 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까지 새로 썼다. 매번 제구에 발목이 잡혀 볼넷을 내주며 고전하는 모습도 이날은 없었다. 6회 1사 후 오지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뒤 후속 정성훈에게도 연속 3개의 볼을 던져 무너지는 듯 싶었지만 이내 정성훈을 우익수 뜬공 처리하며 위기도 넘어섰다. 경기 후 김태형 두산 감독은 "진야곱이 마운드에서 보여 준 여유있는 모습이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며 흡족해했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경기였다. 진야곱은 "이렇게 긴 이닝을 던지게 될 줄 몰랐다"며 "볼넷이 적었던 게 가장 좋았던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경기 후엔 많은 취재진에 둘러싸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주목 받은 적이 없었다"며 어색해 하면서도 "이런 순간순간들이 감사하다"고 했다.
프로 입단 후 늘 자신을 향한 기대보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속앓이도 많이 했을 터다. 하지만 그는 "힘들었던 시간이 길었지만,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한 고생이 가장 힘들고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나. 나 말고도 2군에서 고생한 선수가 많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서 잘 하면 된다"고 담담히 말했다.
두산은 현재 에이스 니퍼트가 어깨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져있고, 마야가 기복 있는 피칭을 이어가며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점'인 선발 야구가 흔들리는 지금, '5선발' 진야곱의 호투는 두산 마운드의 단비와도 같다.
물론 아직 과제는 남아있다. 이날의 모습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투'라는 수식어보다 '믿고 볼 수 있는' 투수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진야곱 역시 이를 잘 안다. 그는 "나는 아직 보직이 확실한 위치의 선수가 아니다. 한 경기, 한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지금 상황에서 최선이다"고 다짐했다.
김주희 기자 juhee@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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