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스틸러(scene stealer)’는 직역하면 ‘장면을 훔치는 자’란 뜻이다. 영화계에서 몇 장면 출연하지 않는 조연이지만, 강한 개성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배우를 지칭할 때 쓰인다. 그런데 이런 신 스틸러는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사람 못지 않은 연기력과 앙증맞은 외모로 ‘신 스틸러’반열에 오른 견공들도 있다. 사람도 하기 힘든 연기를 훌륭히 해낸 견공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가 하면, 연기견(犬)생을 자서전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국내외에서 각종 연기상을 휩쓸며 활약을 펼친 견공 배우들을 소개한다.
▦MBC 드라마 ‘오로라 공주’의 ‘떡대’
알래스칸 말라뮤트 ‘통키’는 2013년 MBC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 ‘떡대’역으로 출연했다. 떡대는 주인공 오로라(전소민)의 충견으로 141회에서 갑자기 죽는다. 통키는 오로라가 오열하며 흔들어대도 꼼짝 않고 죽은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통키는 코리아경찰견훈련소 출신으로, ‘오로라 공주’의 임성한 작가가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다. 통키는 촬영장 전용 대기실을 제공받았고, 리허설을 생략하는 특권도 누렸다. 통키의 연봉은 1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화이트 갓’의 ‘하겐’
국내에서는 지난 4월에 개봉한 ‘화이트 갓’은 제 67회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과 ‘팜 도그’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팜 도그 상은 칸 영화제 상영작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펼친 개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하겐’역의 ‘루크’와 ‘바디’가 수상했다. 형제견인 루크와 바디는 돌아가며 하겐 역을 연기했다. ‘화이트 갓’은 사람에게 버려진 유기견들의 복수를 다룬 영화다. 영화 속 하겐은 강렬한 액션은 물론 풍부한 감성을 요구하는 연기까지 무리없이 소화해 내며 호평을 받았다.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은 “개를 훈련시키기 위해 6개월이 걸렸다”고 밝혔다.
▦영화 ‘마음이’의 ‘마음이’
영화‘마음이’(2006)와 ‘마음이2’(2010)는 한국 영화사상 첫 동물 영화 시리즈다. 주인공 ‘마음이’역에 동일한 견공 배우 ‘달이’가 열연했다. 달이는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연을 꿰찼다. ‘마음이2’의 이정철 감독은 “개보다 사람이 더 NG를 많이 낸다”며 달이의 연기력을 추켜세웠고, 배우 성동일은 “달이는 80개의 단어를 알아들으며 슬레이트도 안다”고 놀라워했다. 달이는 ‘마음이2’로 제 8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에 동물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배우 전도연, 김윤진과 각축을 벌이기도 했다.
영화 ‘블라인드’(2011)에서는 안내견으로 출연했다. 제작사 문와쳐 윤창업 대표는 “극중 시각장애인인 김하늘씨와 애절한 눈빛을 나누고 주인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연기는 달이 밖에 못 한다”고 극찬했다.
▦영화 ‘아티스트’의 ‘어기’
영화 ‘아티스트’(2011)는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어기’는 극중 배우인 주인공 ‘조지’가 출연하는 영화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연기 파트너이다. 어기역을 소화한 개리는 이 작품에서 조지역의 장 뒤자르댕과 뛰어난 호흡을 뽐내며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어기는 이 영화로 2012년에 견공들의 아카데미 ‘골든칼라 어워즈’에서 최고상인 ‘톱도그’상, 칸 영화제에서 ‘팜 도그’상을 수상했다. 영화 ‘아티스트’가 작품상 등 5관왕을 석권한 제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개리를 위해 독립좌석이 마련됐다. 개리는 ‘아티스트’를 마지막 작품으로 은퇴했는데, 은퇴식에선 견공배우 최초로 핸드프린트를 남겼다. 2012년에는 개리의 삶은 담은 자서전 ‘어기: 내 이야기’가 출판되기도 했다.
박은진 인턴기자(경희대 경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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