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로 구성돼 경영 감시
주주들과 마찰 줄이는 효과
현대차도 자의반 타의반 도입 전례
삼성 우호지분 40%대… 안심 못해
공격적 행보 엘리엇에 맞불 대응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싸고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수 싸움을 벌이는 삼성이 과연 다음 카드로 무엇을 꺼낼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과거 사례를 비춰 봤을 때 삼성 측에서 주주권익보호위원회, 일명 ‘거버넌스위원회’ 설치를 거론할 것으로 보고 있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문제의 돌파구로 주주권익보호위원회 설치가 거론되고 있다. 삼성물산 측은 확답을 하지 않고 있으나 주주들을 달랠 수 있는 카드 가운데 하나로 주주권익보호위원회 설치 방안도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흔히 거버넌스위원회로 불리는 이 조직은 사외이사를 주축으로 구성돼 주주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경영 사안을 미리 살펴보고 의견을 낸다. 의견이 강제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철저하게 주주 입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살펴보고 보고서를 내기 때문에 기업들이 더 이상 회사 이익만 앞세우는 일방통행식 결정을 하기 힘들다. 이를 통해 주주들은 회사의 경영 행위를 믿을 수 있고, 회사는 주주들과 소통하며 마찰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지난 4월 투명경영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주주권익보호위원회를 설치했다. 사외 이사로만 구성된 이 위원회는 소액주주 보호와 주주 가치 제고를 목표로 한다.
현대차가 주주권익보호위원회를 설치한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당시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10조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받은 것을 둘러싸고 지나치게 비싸게 사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비난이 제기되면서 네델란드 연기금을 운영하는 APG자산운영이 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위원회 설치를 요구한 APG자산운용의 네델란드연기금은 삼성물산 지분도 0.35% 갖고 있다.
따라서 삼성물산도 엘리엇과 대립이 심해지면 주주권익보호위원회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재계 관측이다. APG자산운용은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며 합병을 반대하고 있다.
삼성 내부의 분위기 변화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달 26일 합병 결정을 발표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은근히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은 철저하게 삼성물산 주주간의 분쟁이라는 입장이다. 이후 삼성물산은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카드가 바로 주주권익보호위원회다.
엘리옷은 경영권 강화를 위해 합병이 필요한 삼성의 입장을 역이용해 물고 늘어지는 형국이다. 그래서 보유 지분으로 이익을 최대한 올리기 위해 주주 가치 보호를 거론하며 합병비율 재조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현재 삼성물산은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백기사로 나선 KCC, 합병에 반대하지 않을 경우 동원할 수 있는 국민연금 등 약 40% 지분을 가져갈 수 있다. 반면 엘리엇을 비롯한 외국인 지분은 30% 이상이다. 계산상 삼성물산이 유리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어서 주주권익위원회 설치를 고려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주주권익위원회 설치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주주권익위원회와 배당 확대 등은 주주달래기 차원에서 좋은 카드이지만 엘리엇처럼 공격적인 주주가 만족할 지 의문”이라며 “굳이 쓴다면 분쟁이 마무리된 뒤 나중에 활용하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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