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서 거리 둬 집도 안 들어가
자녀들까지 등교 막고 귀가 조치… 진료 의지 꺾는 반교육적 처사"
마녀사냥 식 낙인에 극도의 좌절감
“그저 지금으로서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 외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가 유포된 병원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 대형병원의 한 의사는 11일 본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자세하게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을 비춰보면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듯 했다. 환자가 병원을 찾았고, 병원으로서는 당연히 치료 과정을 밟았을 뿐이었다. 정부가 초동 조치를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지금은 병원과 의료진이 메르스를 퍼뜨린 원흉인양 여겨지는 것은 부당하다는 복선이 깔려 있었다. 격리 대상이 아니지만 그는 “병원에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에서 거리를 둬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의료인들과 그 가족을 향하고 있다. 특정병원과 의료인, 그리고 그 가족을 향한 마녀사냥 식 낙인 찍기에 최 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들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이날 대한의사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일부 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의료인 자녀 등교 불허조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선 학교에서 메르스 환자 경유 병원 혹은 치료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과 직원 자녀들의 등교를 막고 귀가 조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데 따른 것이다. 의사협회는 “이런 조치는 의료인의 진료 의지를 송두리째 꺾는 것으로 메르스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교육기관으로서 있어서는 안 될 반교육적 처사”라고 꼬집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의료인들의 좌절감도 극에 달하고 있다. 최근 의료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마스크의 도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글에는 그들을 향한 엇나간 시선과 그에 대한 우려와 고통이 담겨 있다. 한 의료인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에는 “하루 종일 마스크 착용하고 손 씻기 하고 바이러스와 치열하게 싸우며 일하고, 집에 돌아와 아무리 깨끗하게 나를 씻어내도 어린 자녀와 가족들을 만지기가 두렵다”는 호소가 담겼다. 이어 “희생자가 더 많아지는 것은 국가의 허술한 방역체계와 늑장대응 탓이지 한 병원의 한 의사의 책임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열악한 상황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며 일하는 의료진에게 힘내라는 응원 한마디”라고 호소했다.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시민들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에게 격려 캠페인을 벌이는 등 메르스 확산 사태 진정을 바라는 마음을 표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병원과 의료인을 향한 그릇된 시선은 줄지 않고 있다. 이날 서울의 다른 대형병원에는 평소보다 외래 환자가 절반 이상 줄었다. 확진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는 곳도 아닌데도 ‘메르스 환자가 다녀갔고 이후 확진 환자가 나왔다’는 정부 발표가 있은 후부터 무관한 분야의 환자들도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을 찾은 분들 중에는 ‘주위 사람들이 병원과 의료진 근처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하신 분도 상당수”라며 “병원과 의료진을 바이러스 덩어리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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