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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정착촌, 편견ㆍ소외 어루만질 특별한 오케스트라

입력
2015.06.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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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공부방ㆍ놀이터도 없는 벽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심어주자"

주민들이 뜻 모아 석달 전 창단

한센인 회복자 정착촌인 전남 여수 도성마을의 아이들이 세상을 향한 희망의 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11일 오후 도성마을의 애양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박상희 단장(뒷줄 가운데)과 함께 13일 예정된 첫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박성태 사진작가 제공
한센인 회복자 정착촌인 전남 여수 도성마을의 아이들이 세상을 향한 희망의 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11일 오후 도성마을의 애양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박상희 단장(뒷줄 가운데)과 함께 13일 예정된 첫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박성태 사진작가 제공

해질 녘 전남 여수의 한센인 정착마을엔 붉은 노을을 타고 음악이 번졌다. 첫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앞둔 마을 아이들의 연습 소리다. 연주 소리는 끊기기 일쑤고 서로 음이 맞지 않아 불협화음을 빚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만들어낸 그 음악에 마을 사람들은 고단함을 녹이고 그간의 서러움을 위로 받았다.

여수의 도성마을에 특별한 오케스트라가 탄생했다. 여수 율촌면의 도성마을은 여수에서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로 오래 전 한센병 환자의 재활을 위해 만들어진 정착촌이다. 현재 한센인 회복자 87명과 일반 주민 등 36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여수 시내와 20분 거리에 있지만 한센인 집단 거주지라는 이유 때문에 사회ㆍ문화적으로 고립된 곳이다. 변변찮은 공부방 하나 없고 흔한 놀이터나 목욕탕 조차 없다. 구멍가게가 달랑 하나뿐이고, 교통수단도 한 시간에 1대씩 들어오는 시내버스가 유일하다.

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주민과 마을 출신 음악가, 후원자들이 뜻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탄생시켰다. 오케스트라 단원은 마을의 한센인 회복자와 일반인의 자녀들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41명의 학생들이 악기를 손에 쥐었다.

아이들을 지휘하는 박상희(33) 단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 현재 여수 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과 여수교육청의 오케스트라 강사로 일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 탓에 마을의 학생들은 문화나 교육적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해요. 놀이터 하나 없어 학교 갔다 오면 집에서 빈둥대며 노는 게 다예요.”

그나마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마을의 도성교회 나양오 목사의 부인 차미경씨를 만나 바이올린을 배우게 됐다. 그렇게 입문한 음악으로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마을은 제 어릴 적 환경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아이들에게 뭔가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일을 찾게 됐고, 목사 사모님께 배운 것처럼 틈나는 대로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다 지금 오케스트라 창단까지 오게 됐어요.”

그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꿈이 생긴 것처럼 지금의 아이들도 음악을 통해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악기를 다룬 지 2개월이 지났는데 아이들이 점점 재미를 느껴가며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소외되고 상처 받은 마음이 음악을 통해 치유되고 밝아진 아이들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합니다.”

오케스트라 창단에는 상희씨의 아버지 박지성(59)씨의 노력이 컸다. 창단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돈이 없어 고가인 악기를 구할 수 없었고 아이들을 가르칠 강사 초빙도 어려웠다. 물품과 악기 대부분을 기부 받았다. 한센병에 걸려 1965년 서울서 이곳 도성마을에 내려온 김재수(84) 할아버지는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을 접하고 이틀 밤을 고민하다 장례비에 쓰려고 평생 모아둔 통장을 털어 피아노를 기증하기도 했다.

박 단장은 동료 연주자 등 자원봉사에 나선 강사들과 함께 지난 3월부터 평일과 주말을 이용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첫 연주회는 13일 오후 2시 30분 도성마을 새마을복지회관에서 열린다. 아이들은 아직 연주 실력이 서툴지만 세상에 나선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다. 첼로를 연주하는 중학교 1학년 권모(14)군은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매일 휴대폰으로 오락만 했는데 첼로를 다루면서 꿈이 생겼어요. 열심히 노력해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요”라고 밝게 웃었다.

아이들은 앞으로 실력을 갈고 닦아 마을 어르신과 소록도 한센인, 문화 소외 지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연할 계획이다.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한센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없애고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하게 된다.

박지성씨는 “한센인들은 오랜 기간 사회와 격리돼 생활하며 인간다운 처우와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이들만큼은 소외와 편견에서 벗어나 사회에 당당히 나가 세계무대에 오를 때까지 뒷받침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여수=하태민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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