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년대부터 26대째 가족 경영
솔라이아 등 최고급 와인 4종 생산
이건희 회장 임원 선물도 이곳 제품
"포도의 여러 품종을 한 밭에서 재배… 맛 결정하는 건 품종보다 땅이죠"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태양에는 물기 한 방울도 없다. 10일 오전 10시 반. 쨍 하니 내려 꽂히는 태양의 작열에 눈을 뜰 수 없는 이곳은 이탈리아 와인을 대표하는 안티노리사의 와이너리. 아니, 이건 정확하지 않다. 안티노리는 현재 이탈리아 전역뿐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 헝가리, 몰타, 칠레 등에도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 와인 생산 기업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곳은 토스카나의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에 위치한 ‘티냐넬로 에스테이트’로, 안티노리가 생산하는 수많은 와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최고급 와인 티냐넬로(Tignanello)와 솔라이아(Solaia)가 생산되는 곳이다. 10년 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임원들에게 새해 선물용으로 선택해 ‘이건희 와인’으로 붐을 일으켰던 와인이 바로 티냐넬로다. 와인의 혁신을 상징하는 ‘슈퍼 투스칸’의 효시이자 우리나라 CEO들이 가장 애호하는 와인이기도 하다.
혁신의 와인 ‘슈퍼 투스칸’
프랑스 와인과 달리 산지명을 이름으로 사용하는 이탈리아 와인은 포도의 품종과 양조방식을 법으로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조건 충족 수준에 따라 등급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어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고르기가 더 수월한데, 좋은 와인에는 DOC, 더 좋은 와인에는 DOCG라는 조폐청에서 발행한 인지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든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 삐딱한 천재들이 존재하는 법. 정부 인증의 카테고리를 과감히 벗어나 새롭고도 놀라운 맛과 향을 만들어낸 이탈리아 와인을 슈퍼 투스칸이라고 부르는데, 1975년 출시된 티냐넬로가 바로 최초의 슈퍼 투스칸이다.
“전통적인 토스카나 지방의 와인 산지인 키안티 클라시코에서는 토종 품종인 산지오베제만 재배해왔습니다. 하지만 티냐넬로는 국제적인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을 함께 심어 블렌딩하는 새로운 도전으로 탄생했죠.” 티냐넬로 와이너리의 양조전문가이자 책임자인 파올로 나르도씨는 “품종별로 포도를 심는 것이 아니라 와인별로 그 안에 들어가는 여러 품종을 같은 밭에 심는 것이 이곳 와이너리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포도밭이 품종이 아닌 와인 종류에 따라 섹션별로 나뉘어 있는 것. 이 와이너리는 특이하게 포도나무 사이에 흰 돌을 깔아놓았는데, 낮 시간의 뜨거운 열을 돌이 흡수했다가 땅이 식는 밤 시간대에도 나무에 열기를 전달해 포도의 숙성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안티노리가 가지고 있는 전 세계 와이너리 중 핵심인 이 와이너리에서는 티냐넬로와 솔라이아, 마르케제 안티노리, 바디아 아 파시냐노 등 총 4종이 생산된다. 이 중 티냐넬로는 산지오베제 80%, 카베르네 소비뇽 15%, 카베르네 프랑 5%의 비율로 만들어지는데, 이 세 품종이 티냐넬로 포도밭에서 나란히 재배되고 있다. 이탈리아 와인 최초로 미국의 유력 와인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꼽은 세계 100대 와인 1위(2000년)에 올랐던 솔라이아는 카베르네 소비뇽 75%에 산지오베제 20%, 카베르네 프랑 5%를 섞어 만드는데, 솔라이아에 들어가는 산지오베제는 꼭 솔라이아 포도밭에서 나오는 것만 쓰는 식이다.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품종이라기보다는 땅, 테루아”이라는 게 나르도씨의 설명.
솔라이아의 또 다른 특징은 매해 새로 구입한 프랑스산 오크통을 사용해 숙성시키며, 산소 공급을 위해 3개월에 한 번씩 와인을 빼낸 후 오크통을 물로 세척한 후 다시 넣어놓는 작업을 16~18개월간 반복한다는 점이다. “새 통을 사용해야 강한 오크향을 첨가할 수 있고, 그것이 솔라이아의 구조적으로 탄탄하고 중후한 특성을 이끌어냅니다. 산소는 향이 단단하고 풍부해지도록 만드는 포도주의 진화에 필수적인 요소라, 번거로워도 3개월마다 통을 세척하는 거죠.” 티냐넬로와 솔라이아는 런던의 고든 램지 레스토랑을 비롯해 전 세계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 17곳과 12곳에 각각 들어가 있다.
세계 최고(最古)의 와이너리
공식 문서로 기록돼 있지는 않지만 안티노리 가문은 1100년대부터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렌체의 와인 생산자들이 모여 1293년 결성한 와인생산조합에 안티노리가 가입한 것은 1385년. 이 공식적인 기록만으로도 안티노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몇 백년간 가업으로 이어지던 안티노리가의 와인 제조는 17세기 후반 품질을 인정받으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1729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에게 선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바티칸 교황청이 안티노리의 중요한 고객이 되었다.
현재 26대째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안티노리 가문은 현 오너인 피에로 안티노리 회장과 그 세 딸이 경영을 이어받아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피에로 안티노리 회장은 와인의 혁신, 슈퍼 투스칸을 통해 이탈리아 와인의 르네상스를 일궜다고 평가 받는 인물이다.
안티노리 가문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던 와이너리 내 빌라 티냐넬로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한 장녀 알비에라 안티노리 부회장은 “티냐넬로 에스테이트가 안티노리 와인의 전통을 상징한다면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에 2012년 완공한 새로운 셀러는 안티노리의 미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안티노리는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의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에 와인 생산시설과 저장고, 박물관, 도서관, 레스토랑, 와인판매점 등을 두루 갖춘 초현대적 첨단 건물 ‘안티노리 넬 키안티 클라시코’를 짓고, 2013년 피렌체 시내의 본사를 이곳을 이전했다. 빌라 안티노리, 마르케제 안티노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페폴리, 키안티 클라시코 등의 와인이 생산되는 이곳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는 복합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와인은 한식과도 잘 어울려”
안티노리 와인의 해외 판매량 중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6%밖에 안 된다. 그 6% 중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11%로, 25%인 일본, 각각 20% 전후인 홍콩과 중국보다도 작다. 하지만 알비에라 부회장은 “음식을 미술, 건축, 패션 등과 아울러 문화 전체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이탈리아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아직 와인 문화가 정착되지는 못했지만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안티노리는 대중적인 저가 와인보다는 CEO들이 좋아하는 고급와인의 매출이 훨씬 더 좋다. 저가 와인은 칠레나 아르헨티나 같은 후발주자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실은 이쪽에서의 경쟁이 훨씬 더 힘들다고. 최근에는 중국까지 뛰어들었다. 와인 생산이 가능한 지역은 황허강 중부의 닝샤 지역밖에 없으리라는 게 알비에라 부회장의 예측이지만, 상당한 위협이 되는 건 사실이다.
이날 점심식사에 알비에라 부회장은 토스카나 지역의 격조 있는 전통 가정식을 내놨다. 전채로는 호박꽃 튀김, 첫 번째 코스로는 올리브유에 볶은 야채 파스타, 메인요리인 두 번째 코스로는 닭과 양고기 구이, 구운 토마토와 아스파라거스, 디저트로는 자두를 곁들인 아이스크림이었다. 와인은 바디아 아 파시냐노와 티냐넬로를 각각의 코스에 매칭했다.
맵고 짠 한국음식의 특징이 와인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지만, 알비에라 부회장은 “김치 중에서도 마늘과 양념이 특별히 많이 들어간 김치만 아니라면, 한식과 와인은 충분히 잘 매칭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불고기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아니면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와 잘 어울릴 거예요. 야채 등 가벼운 음식에는 페폴리가 좋고요. 쿨투라 델 치보(cultura del ciboㆍ음식에 대한 문화)가 있는 곳이라면 와인이 잘 맞게 되어 있습니다. 아시아, 한국에는 바로 그 문화가 있죠.”
키안티 클라시코(이탈리아)= 글ㆍ사진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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