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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기후변화와 지배의 비극

입력
2015.06.1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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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기만 해도 쩍 갈라질 것만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언론사들은 앞 다퉈 “사상 최악의 가뭄”이라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올해 강수량이 예년에 비해 40% 수준에 불과하고, 이로 인해 농작물 작황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니 그런 말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이놈의 가뭄은 지난 겨울에도, 작년 여름에도, 그 이전 겨울에도 있었다. 강수량 데이터는 차치하더라도 신문기사만 검색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런 현상은 가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거기다 여름철 장마는 점점 더 불안정해져 기상청조차 수년 전부터 장마 종료 예보를 하지 않고 있다. 이제 ‘이상기후’가 아니라 ‘일상기후’ 라는 말이 더 적합해 보인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명백히 퇴행하고 있는 중이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에너지기본계획과 온실가스 감축계획안을 보면 그런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다.

정부안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와 비교해 약 15~30%를 감축해야 한다. 현재 배출하고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감안하면 이번에 발표한 정부의 감축계획은 꽤 의욕적인 목표로 읽혀진다. 하지만 정부 목표는 2009년과 2014년에 발표했던 감축 계획보다 상당히 후퇴했다. 기후변화가 지구촌 화두로 손꼽히며 각국이 예전에 발표했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더해 추가적인 감축 계획을 내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동의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결정된 ‘온실가스 감축량 후퇴 금지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시간이 많지 않아 정부의 계획을 국민들은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상반기 안으로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유엔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향후 15년간의 국가계획을 확정하는데 이를 심사 숙고해야 할 국민들에게는 고작 20일간의 시간만 제공한 셈이다. 정부 발표안에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내용을 검토하고 대안을 만들어 다시 정부 협의를 거친 후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 최종 결정되는 과정이 20일 안에 끝날 수 있다고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국민 의견이 다르더라도 사실상 정부안을 그대로 확정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발표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면서도 늘어나는 에너지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벌써 수년 째 전력소비 증가율이 1% 대 미만에 그치고 있다. 에너지 소비가 이미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는 의미다. 또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수단 중 에너지 효율화가 60%를 차지하고 있다. 원전은 10%에 불과하다. 원전 건설과 유지, 폐로 및 방사성 폐기물 처분 비용까지 감안하면 지금 원전을 늘리는 건 기후변화 대응수단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몇 년 동안 원전업계가 보여준 비리와 무능을 감안하면 이건 메르스 같은 전염병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왜 무시하는 걸까.

물론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 권한이 오롯이 정부에게만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정부의 정책은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의견을 받을 때 생명을 부여 받는다. 춘추시대 사상가였던 관자는 “무릇 정치란 민심을 따라서 흥하고 민심을 거슬러서 망한다(政之所興 在順民心 政之所廢 在逆民心)”고 갈파했다. 기후변화나 에너지 문제처럼 장기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국민은 다스려야 할 대상이 아니고 같이 의논하고 행동해야 할 동반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마냥 국민과의 사이가 방치되어서도 안 된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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