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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금연정책에도 소통이 중요하다

입력
2015.06.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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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 정치인과 탐욕적인 시민들에게 휘둘린 민주정치의 미래는 비극적이다.” 그리스 희극작가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에서 인간의 불확정성을 부정한 극단적 정치 결단이 가져올 폭력적이고 비극적 결말을 경고했다. 그의 우려대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거치며 시민의 이기심과 선동 정치인의 무책임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원리적 강령은 사회 담론을 극단으로 몰아간다. 그 앞에서는 중도적 주장이나 타협적 대안은 ‘반대론자보다도 더 나쁜 회색분자’로 낙인 찍히고 배척된다. 비판적 판단과 합리적 대안을 철저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였다. 이는 기존의 한국적 전통을 모두 버리고 바꿔야 한다는 ‘강요된 조정’을 요구했고, 일말의 이견 제시나 절충적 주장이 발 디딜 곳은 없었다. 그렇게 믿고 따랐던 ‘글로벌 스탠더드’가 거대한 해외 금융자본의 탐욕을 포장했던 구호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치는 데 불과 10여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이 외국자본에 헐값으로 넘어갔고, 사회는 양극화되고 피폐해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금연’이라는 또 다른 원리가 용트림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나 파급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할 바 못되지만, 그 전개 양태는 유사하다.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적 해악’이라는 인식 변화를 종용하거나, 담배세와 같은 비싼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흡연을 옹호하려는 뜻은 추호도 없다. 필자는 주변에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으라고 강권하는 금연론자다. 그러나 담배를 마약이나 대마초에 준하는 해악으로 간주하고, 흡연을 거의 범죄에 가까운 행동으로까지 몰아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

흡연을 둘러싼 논쟁이 또 하나의 사회적 갈등요인이 돼서는 안 된다. 금연은 사회 구성원의 인식을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추구해야지, 결론을 정해 놓고 흡연을 범죄 취급하듯 하는 강경 일변도여서는 안 된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담배가 합법적인 상품이며 흡연 자체가 불법적인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담배연기로부터 비흡연자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흡연부스와 같은 흡연구역을 설치하고, 그 곳에서만 흡연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에 주안을 둬야 한다. 출구가 없는 일방적인 금연구역 확대 시책은 오히려 풍선효과만 가져온다. 주차장을 만들지 않고 ‘주차금지 구역’만 지정한다면 주변도로는 주차 차량으로 교통이 혼잡해질 것이고, 쓰레기통을 설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쓰레기투기 금지 거리’만 지정한다면 그 주위의 이면도로가 쓰레기로 넘쳐날 것이라는 점은 경험해 보지 않아도 가늠할 수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금연정책에 대한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려면 시민정신이 자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우선 갖춰야 한다.

흡연부스와 같은 흡연설비를 갖추는 데 따른 예산을 운운한다면 그 또한 정부의 금연정책 추진 의지에 대한 진정성 시비를 불러올 핑계로 비칠 수 있다. 정부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담배세 수입의 일부만이라도 흡연구역 설치에 사용한다면, 금연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나 갈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합리적 대안을 찾기 위한 소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아주 사소한 것 같은 금연 문제에서 국민들과 소통에 충실하고 있는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진한다는 금연주의 강령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현실과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소통에서 가장 큰 문제는 소통했다는 착각이다.”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이 말을 다시 한 번 더 되새겨볼 때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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