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가스 용기 분야의 유명업체
"수년간 불량품 납품해 수백억 이득"
경찰, 한수원에 알려 후속 안전 조치
경찰이 원자력발전소의 필수설비 중 하나인 수소저장장치의 일부가 안전기준에 미치지 못한 채 제작ㆍ납품됐다는 단서를 포착하고 해당 업체를 상대로 수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부산 소재의 연료용기 전문제작업체인 A사에 대해 사기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이다. A사는 여권 핵심 인사의 인척이 운영하는 곳으로 고압가스용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업체로 알려졌다. 주로 원전 수소저장장치나 버스 가스충전소의 가스저장탱크 등을 제작해 납품하고 있다. 경찰은 이 업체가 수 년 동안 안전기준에 미달한 제품을 납품하면서 수백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연방교통부(DOT)와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국내ㆍ외 품질검증기관으로부터 제품인증을 받기는 했지만, 경찰은 이 과정에서 미처 걸러지지 않은 결함으로 인해 원전설비로는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경찰은 앞서 A사를 압수수색해 혐의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했으며 임직원을 소환 조사해 제품 결함을 알고도 납품을 해 왔다는 취지의 진술도 일부 받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원전 현장에 수사관들을 보내 설치된 저장장치에 대한 안전기준 검증 실험까지 마친 상태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A사가 품질인증을 받은 것처럼 서류를 위조하거나 이를 위해 검증기관 등에 로비를 한 흔적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A사가 납품한 수소저장장치는 원전 터빈을 가동할 때 냉매 역할을 하는 수소가스를 압축해 담아두는 일종의 연료탱크다. 통상 이 장치는 원전 바로 옆에 부속건물처럼 설치돼 있다. 이 설비가 불량해 수소가스가 누출될 경우 인화점이 낮은 수소 특성상 폭발 가능성이 높아지며 냉각기능 저하로 원전 전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수소량이 적다면 자연적으로 사라질 수 있지만 다량이 누출될 경우 위험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3월에는 원전 신고리 2호기에서 수소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해 원전 출력을 낮춘 후 누출 지점을 긴급히 밀봉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만 원전을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A사가 설치한 수소저장장치에 대해 경찰로부터 이상 통보를 받은 후, 수사가 진행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안전확보 차원에서 보수나 교환 등 후속 조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A사 법무팀 관계자는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경찰 수사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지금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또 A사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광장 측은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해서 모두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경찰이 무리해서 수사를 하는 것일 뿐 전혀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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